우리 집에 나를 제외한 유일한 생명체. 이름 모를 식물 하나다. 식물 키우기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으면서 이 친구와 함께 한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어간다. 키가 큰 나무의 연식이 50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식물의 나이가 20년이라고 하면 놀란다. ‘식물 연식이 그렇게 길 수 있나? 그럼 언제부터 키웠다는 거야?’
이 친구와 긴 세월을 함께한 사연은 이렇다. 나의 30대. 힘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온 마음이 쏠려있던 때다. 그 당시에 제일 많이 썼던 문장이 ‘목구멍이 포도청’과 ‘명퇴해야지’였다. 명퇴는 20년 회사를 다녀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입사 초년생에겐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서울살이 하며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이 회사를 다녀야 하는 현실. 이런 복잡한 상황들이 뒤섞어 이 두 문장을 매번 되뇌며 버텨내던 시기였다.
출근해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 부서 선배가 빨간 플라스틱 화분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화분에 담긴 식물은 시들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죽지 않았는데 왜 버리나 싶어 선배에게 물으니, 별로 예쁘지 않은데 시들기까지 해서 그냥 버리는 거란다. 나는 선배에게 괜찮다면 달라고 했고 선배는 흔쾌히 나에게 식물을 건넸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추측건대 살아있는데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친구 모습이 마치 그 당시 나의 모습같이 느껴져서일 것 같다. 심지어 죽지 않았는데도 버려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으리라. 이런 인연으로 그 친구와 나는 20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런데 좀 웃긴 건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모른다. 관심이 조금만 있었으면 찾아보았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럼 애칭이라도 지어주었을 텐데 그것마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한 일인데 나에겐 정말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 친구에겐 미안한 게 많다. 물도 수돗물을 졸졸 틀어놓고 화분을 아래에 놓고 주었다. 시들어 보이면 쌀뜨물을 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쌀뜨물을 가끔 부어준 거 외엔 따로 영양분을 공급한 적도 없다. 20년 동안 분갈이를 딱 두 번 해줬다. 그래도 이사할 때마다 가장 먼저 챙긴 건 이 식물이었다. 20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친구. 그렇게 키워진 식물은 나 같이 식물에 무지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지금까지 강인하게 살아 있다. 고마운 마음이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은 고마운 마음이고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나의 궁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친구의 이름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