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름은....

by 이곰

20년 동안 겨울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곰이 밀린 잠을 자듯, 퇴직을 하고 계속 잠만 잤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잠에서 깨면 천장을 바라보다가 왼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잠을 잤다. 또 잠이 깨면 다시 천장을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눈을 감았다. 그 당시 가장 많이 본 게 바로 침실 천장이다.


한 달 넘게 잠만 자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니 조금씩 집안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수선하고 정리 안된 상태. 유독 눈에 띄는 건 식물 친구였다. “이제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흙에 덮여 보이지 않아야 할 뿌리가 들려 있었다. 잎들도 정리해 주지 않아 서로 엉켜있다. 비상 상황이다.


상황을 해결해 줄 꽃집을 찾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특색 있는 동네 꽃집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 꽃이 주인공이고 식물은 엑스트라다. 이런 곳에서 식물 상담이 가능할까?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동네를 한참 돌아다니다 관엽식물만으로 가득 찬 가게를 발견했다. 독특한 콘셉트였다. 그동안 보아왔던 꽃집과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리고 외치는 듯했다. “오로지 관엽식물만!!!”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문 앞에 서서 안을 살펴보았다. 이국적인 식물들이 가득하다. 처음 보는 식물도 많았다. 빈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열대우림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식물의 외형과 잎 모양이 다양하고 화려해서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런데 공간이 너무 색달라서 들어가는데 왠지 주저되었다. 미어캣처럼 문 앞에서 안쪽을 살피기를 여러 번.


응급실을 찾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분갈이하고 있던 사장님이 고개를 돌린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식물을 보여주었다. 식물 상태를 보더니 여러 가지를 묻는다. 분갈이는 언제 해 줬는지, 비료를 준 적은 있는지, 물은 어떤 식으로 주었는지. 나는 답했다. 분갈이는 10년 전에 해주었고, 비료는 가끔 쌀뜨물을 주었고, 물은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 주었다고.


이야기를 듣는 사장님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장님 왈. 분갈이는 매년 아니면, 못해도 2~3년에 한 번씩은 해 줘야 하고 비료는 계절과 식물 성장에 맞게 주어야 하고 물은 물뿌리개를 사용해서 골고루 주어야 한다는 거다. 내 식물은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한 거나 다름없구나.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다니 실로 놀랍다. 역시 내 친구는 강한 녀석이었다.


응급처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자체적으로 숨을 쉰다는 토분에 영양이 가득한 흙으로 분갈이가 이루어졌다. 시든 잎과 지저분한 줄기도 정리하고 얽혀있던 잎들도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물 샤워를 해 주고 나니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아니다. 지저분한 강아지의 털을 정리하고 정리 전후를 비교하면 그 변화가 놀라운 경우가 있다. 같은 강아지 맞아? 그것처럼 내 친구도 깔끔한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사장님이 또 한 번 경악할 걸 알지만 물었다.

“이 친구 이름이 뭔가요?”

‘이름도 모르고 20년을 키우셨어요?’라는 사장님의 표정.

‘미안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머쓱함을 담아 웃었다.


“잎이 작아서 애매하긴 한데 잠시만요” 사장님은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식물 앱을 켰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다. ‘정말 좋은 세상이구나’

“애매했는데 맞네요. 이 친구 이름은.... 두두두두 스파티필룸이에요”


스파티필룸??? 검색해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식물 모양과 일반적인 스파티필룸의 그것이 많이 달랐다. 내 친구의 경우는 체형이 작다. 줄기도 잎도 작다. 그런데 연식이 오래된 스파티필룸은 잎도 거대하고 꽃도 폈다. 왜 이렇게 다르지?


사장님 왈. 내 친구는 원래 체격 자체가 큰 스파티필룸은 아닌 것 같단다. 그래도 보통 20년이면 많이 컸을 텐데....로 마무리 지었다. 식물 공부를 좀 해 보니 내가 분갈이만 제때 해 주었어도 지금보다는 더 컸지 않았을까 싶다. 미안하다. 친구야. 그래도 20년 만에 친구의 이름을 알게 되어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애칭이라도 하나 지어 불러줘야겠다 싶다. 그리고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20251210_080740.jpg



이전 01화화분 하나가 내 삶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