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

by 이곰

크리스마스 같은 걸 챙기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 있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이런 날들에 점점 무뎌졌다.


그런데 자주 가는 식물 가게에서 눈에 들어오는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아라우카리아.


이게 정말 살아 있는 나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딱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시든 잎 하나 없고,
마치 잘 만들어진 조화를 보는 것 같았다.


식물도 잎을 자주 만지면 상처를 입는다고 해서
웬만하면 눈으로만 감상하는 편인데
이 친구는‘정말 살아 있는 식물이 맞나?’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침엽수처럼 잎이 뾰족하지만
막상 만져보면 생각보다 부드럽다.
기르기 순한 친구라는 사장님 말에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작은 식물이 대부분인 우리 집 정원에
이 친구를 들이면 어색하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뭐랄까, 듬직한 느낌이 있었다.
시중을 많이 들어야 하는 어린 친구들과 달리
이미 제법 자라

청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였다.


그래

집에 이런 친구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들 수 있는 식물만 데리고 왔는데
아라우카리아는 크기가 제법 커서
집으로 가져오는 길에

몇 번이나 멈춰 서야 했다.
다행히 기존에 있던 친구들과도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크리스마스 하면 빨간 포인세티아가 상징이지만

아라우카리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미니볼과
삼천 원짜리 북유럽 산타 할아버지를 샀다.
집에 와서 미니볼을 아라우카리아에 달았다.


곰손이라 이런 걸 예쁘게 하는 재주가 없어

대충 달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즐거웠다.
볼 열 개를 나름대로 배치하고
화분 옆에 산타 할아버지를 앉혀 드리니
금세 연말 분위기가 났다.

'아, 이게 연말 기분이라는 거구나.'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이런 기분을 낼 에너지가 없었던 것 같다.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잠을 자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나를 책임지며 사는 일,
그 일상을 반백 년 가까이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늘 과부하 상태였다.


퇴직하고
온전히 하루를 나를 위해 보내는 삶은
아직도 어색하고 낯설다.


그런데 이 시간을 식물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식물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앞에서
오히려 뭔가를 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또 다른 무언가로 나를 채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친구들 덕분에
텅 비어 있는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다.
비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충만하다.


아라우카리아에 달린 미니볼을
한참 바라본다.
분무질을 몇 번 해 주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말도 한번 건네본다.


여덟 시가 다 되어 간다.
슬슬 식물등을 꺼 줘야겠다.
이제 친구들이 잠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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