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온실 만들기 1

by 이곰

카드명세서가 나왔다.

최근에 보지 못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퇴직 이후 절제된 소비 생활을 해오던 터라 놀라움이 더 컸다.

‘뭐 사느라 이렇게 돈을 많이 썼지?’


살펴보니 식물, 화분, 화분대, 식물등, 서큘레이터가 큰 금액을 차지하고 있었다.

분갈이에 필요한 원예 상토와 마사토도 있었다.

‘아 맞다. 온실 만드느라 돈을 많이 썼구나.’


평소라면 쓸데없는 소비를 하면 반성부터 했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옷이나 신발, 가방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식물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온실 만드는데 쓴 건데 뭐 어때.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처음엔 식물 가게에서 식물 한 개를 샀다.

그런데 홀린 듯 매일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아, 이거 예쁘네요.”

“아, 저건 잎이 독특하네요.”

“아, 이 연둣빛이 너무 싱그럽네요.”


그렇게 한 달 동안, 식물을 보고 마음이 끌리면 샀다.

넓지 않은 거실의 빈 공간이 야금야금 사라지더니,

한 달 뒤 정신을 차려보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런. 이걸 어쩌지.’


바닥에 놓인 식물을 정리해야 했다.

이케아 쇼핑몰에 들어갔다.

거실 중앙에 둘 중형 화분대, 좌우에 둘 스툴 의자와 높낮이가 다른 소형 화분대를 골랐다.

막상 세 개를 세팅해 보니 거실 길이에 아슬아슬하게 맞았다.

길이 측정도 안 하고 의욕만 앞서 산 탓이다.

하마터면 화분대가 안 들어갈 뻔했다.


화분대 두 개와 스툴을 내가 직접 조립했다. 가구 조립은 평생 해본 적이 없다.

돋보기를 끼고 설명서를 읽었다. 간단할 거라 생각했지만 곰손인 나에겐 아니었다.

‘이래서 가구 조립 서비스를 신청하는구나.’

한 시간이 걸렸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다음엔 꼭 조립 서비스를 신청하리라.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화분을 하나씩 화분대에 올렸더니 거실이 단숨에 정리되었다.

식물이 눈에도 잘 보이고, 식물 가게처럼 은근히 분위기도 났다.

이사하기 싫어 8년을 산 집인데, 식물을 세팅하니 전혀 다른 집처럼 느껴졌다.

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공간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졌다.


밖에 나갔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보았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와.’


내가 살던 오래된 집이 아니었다. 나만의 작은 식물 온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도 식물은 계속 늘었다.

화분대의 빈자리를 채울 작은 식물들을 사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땐 서른 개 가까운 식물이 거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열대우림이 된 우리 집 거실.


사진을 찍어 식물 가게 사장님께 보여드렸다.

사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거실 방향이 어떻게 되세요?”

“서향이요.”

“그럼 오전 햇빛이 부족하니 식물등을 달아주시는 게 좋아요.”

식물등… 음냐.

“그리고 양지, 반양지, 반음지 식물이 섞여 있어요. 햇빛 취향별로 모아줘야 해요.”

양지, 반양지, 반음지… 음냐.

“무엇보다 중요한 건 통풍이에요.”

통풍… 음냐.


그제야 알았다.

식물 가게의 식물들이 왜 그렇게 싱싱했는지.

식물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장님의 끊임없는 보살핌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곧 가을과 겨울이 온다.

식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참사가 올 수도 있다.

나만의 작은 숲을 지키기 위한,

진짜 식집사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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