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살피는 연습

by 이곰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나를 챙기지 못했다.

‘나를 챙긴다’는 말은 책에서 자주 보던 문장인데

나는 내가 나를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어?’ 하는 마음으로.


퇴직 후 크로스핏을 시작하며 몸의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는 정말 나를 챙기고 있었던 걸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숨차게 달려왔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25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했고, 어느새 오십 대가 되었다.

다행히 곤궁했던 경제 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갱년기가 시작됐다.

그동안 쌓여 있던 화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다행히 가족들이 상황을 빠르게 인지했고,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잔잔하게, 계속 살아 있다.

이 불씨는 살아났다 죽었다를 반복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 갈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이 크게 한 번 나봐야

비로소 불씨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큰 불이 난 뒤, 나와 가족들은 화재의 원인을 찾고 크고 작은 불을 함께 꺼 나갔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내 마음은

어느 정도 후련해졌고,

어느 정도 시원해졌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형체모를 억울함과 서러움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런 나를 보살펴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그동안 습관처럼 해왔던 일들을 고치고 있다.

보살핌 받고 싶은 욕구를 타인을 챙기며 대신 채우던 일,

나를 돌볼 에너지를 타인에게 써버리던 일들을 줄여나갔다.

만나고 나면 ‘내가 왜 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지?’

싶어 지던 점심 약속도 줄였다.


대신 그 에너지를 나에게 쓰기 시작했다.

내 좁은 거실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식물에게

물을 주고 잎에 물샤워를 시원하게 해 준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편안해진다.


예전에는

보살핌 받고 싶은 마음을 타인에게 투영했다면

지금은 식물을 돌보는 만큼

나도 함께 돌보고 있다.


식물에게 물을 주고,

나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식물에게 비료를 주고,

나는 크로스핏을 하고 로잉머신 타며 건강을 챙긴다.

홍콩야자의 새 잎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자라다 말고 쪼그라드는 프테리스의 작은 새 잎에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듯,

내 마음 상태도 수시로 살피고 다독인다.


먹고 싶으면 먹게 해 주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게 해 준다.

가만히 있고 싶어 하면

그냥 가만히 있게 둔다.


나를 보살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종국의 정착지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