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나!

어쩌다 이리 늙어버린 거지?

by 지니


중년 끝자락 나이의 어떤 이가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게 되었다. 예약된 모임 장소 방문을 여니 웬 어르신들이 빙 둘러앉아있는 것이었다. 잘못 방을 찾았나 싶어 ‘이키나’ 얼른 방문을 닫았다. 방 안에 이미 와 있던 동창들 눈엔, 어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방을 잘못 찾았는지 이키나 문을 닫고 돌아 나가는 모습이었다.


한파가 거세던 며칠 전, 12월 송년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식사 후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운 마음에 카페라도 들러 차라도 마시자 했다. 식사와 함께 들었던 와인 몇 잔에 살짝 오른 취기로 모두 실없이 웃고 떠들며 들어갈 만한 장소를 찾아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었다. 추운 겨울밤 텅 빈 거리 저만치에 ‘재즈 스토리’라는 네온사인이 눈에 띄었다. ‘재즈’라는 어감이 주는, 뭔가 즉흥적이며 흥에 취해서 끈적일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겨울밤 칼바람을 빨리 피하고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 왔다 싶었다. 어두침침한 가게 안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겨울 찬바람을 묻혀 들어오는 우리 일행을 뜨악하게 쳐다보았다. 한쪽 벽면은 세월 지난 LP 레코드판들로 채워져 있었고 가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라이브 무대 뒷면 스크린에서는 70,80년대 팝가수들의 뮤직 비디오가 요란하게 상영되고 있었다. 손님들과 비슷하게 지긋한 나이의 흰머리 숭숭한 서빙 종업원이 심드렁한 태도로 주문을 받으러 왔다. 생맥주 여섯 잔을 시키면서도 마치 어르신들의 아지트를 우리가 침범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이곳이 바로 늙수그레 쿰쿰한 아재들이 모이는 70.80 라이브 카페구나.’ 어울리지 않은 곳에 온 마냥 뻘쭘하니 앉아 주문한 생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때, 라이브 무대 위 한 가수가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른다. Billy Joel의 ‘Just the way you are’, ‘Piano man’이 울려 퍼졌고 바 안의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일행도 누구랄 것도 없이 어느새 까딱까딱 고갯짓과 손짓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연이어 Stev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불려질 때는 후끈해진 분위기와 함께 가게 안을 가득 채운 모든 사람들 – 심지어 얌전한 샌님들 같던 우리 일행까지도 –이 흥에 겨워 가수와 함께 후렴구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다. 더 이상 그곳에는 아무도 늙수그레하지도 쿰쿰하지도 않았다. 생맥주를 한 잔씩 추가로 주문할 때 그룹 Queen의 ‘Bohemian Rhapsody’가 흘러나왔다. 주문을 받는 흰머리 숭숭한 종업원의 심드렁한 모양새도 어쩐지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시크’ 해 보이기까지 했다.


뜻밖의 즐거움으로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 카페를 나서며 문득 깨달았다. 이 카페에 처음 들어설 때 삼삼오오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사실은 우리 일행과 비슷한 연배인, 70,80 카페에서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문을 열고 카페로 들어오면서 우리 눈에 보였던 그들의 모습처럼, 그들 눈에는 우리 일행 역시 웬 늙수그레한 중년들이었다는 것을.


심하게 왜곡된 내 마음속 거울에 비친 젊은이가 몹시도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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