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싶은 것들

새벽하늘 별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by 지니

주머니에 동전이라도 생길라치면 동네 구멍가게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며 군것질에 탐닉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몹시 궁금했던 것은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는 주인아저씨의 초연함이었다. 달콤하고, 새콤하고, 바삭하고, 쫄깃한 이 많은 유혹들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초연할 수 있을까, 나라면 팔 것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먹어댈 텐데 말이다.


갖고 싶은 것들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 나는 그 많은 군것질거리들에 더 이상 구미를 느끼지 않기에 초연할 수 있었던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그 대답이 쉽지 않다. 나이 들어가며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동트는 하늘 뒤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리는 별들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련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오토바이를 오랫동안 갖고 싶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가 격식과 체면에서 일탈하여 자유를 누리며,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내달리는 장면은 어린 시절의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속도를 낼 수 있는 모터와 든든한 두 바퀴를 갖춘 이 장치는 나에게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표상이었다. 오토바이의 안장에 앉아 그 묵직한 핸들을 어깨 힘으로 안정감 있게 버티고 바람을 가르며 호젓한 도로를 달리는 상상은 내 마음을 자유와 독립이라는, 너무 멋져서 결코 다다르지 못할 것 같은 세계로 연결시켜 주었다. 대학생이었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부모님께 넌지시 청해보았다가 크게 혼났었다. 나도 내 자식이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한다면 그 철없음에 크게 꾸지람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오토바이에 대한 갈망은 입에 올릴 수 없는 금기가 되었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는 주부로서의 삶 속에서 잊혔다. 하지만 배기량이 넉넉하고 멋들어지게 장식된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바람 속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으며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라이더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각적인 상상은 언제나, 결코 이룰 수 없는 갈망일 것이라는 쌉쌀함과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다는 설렘을 함께 안겨준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반려견을 갖고 싶다.

몇 해 전 9년 동안 키우던 반려견 ‘버디’를 저 세상에 먼저 보냈다. 버디는 맹인 안내견으로 잘 알려진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혈통 좋은 개였다. 흰 크림색 털과 잘 발달된 체격을 갖고 있는 수캐였는데, 생후 50여 일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버디의 선량한 검은 눈동자는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순화시켜 주었고, 그 영특함은 온 가족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성정이 순종적이고 선량하기 그지없었으며 신사다운 기품이 느껴졌다. 버디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 온전히 자신을 주인의 손길에 맡긴 버디의 일생을 생각하면 나는 큰 회한과 상실감을 느낀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절에 우리는 버디와 많은 시간을 놀아주지 못했다. 마당에서 버디는 집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식구들의 기척에 귀를 세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이다. 그 크고 예쁜 눈망울로 버디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가족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보냈을까. 마음이 저려온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개를 볼 때마다 그 늠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난 버디를 다시 만난 듯 반갑고 가슴이 뛴다. 한 마리 데려다 키우며 버디에게 빚졌던 사랑을 대신 갚고, 버디로부터 받았던 것과 같은 신실함과 사랑을 다시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난 결코 나 자신에게 그런 자격을 허락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연 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집에서 살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호숫가 집처럼 작고 아담할 뿐 아무런 허세나 요란함이 없어, 내 영혼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집을 꿈꿔 본다. 가끔 해가 좋으면 훌렁 웃옷을 벗어던지고 마당에 드러누워도 남의 시선이 걱정되지 않는 집. 신기한 산새와 벌, 장수풍뎅이, 나비들만이 기꺼이 방문할 뿐, 외따로 떨어져 있어 가끔은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다툼조차도 그리워지는 집. 독수리의 요새처럼 높은 전망을 갖고 있어서, 세상사로 답답해진 마음을 시원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집. 잠자리에 누우면 머리 위 천창으로 가마득한 우주를 나에게 보여주며, 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마음이 시큼하게 일깨워 주는 집. 지극히 소박한 살림살이만 갖추어져 있어서, 그 속에서의 절제된 의식주 생활이 나의 정신을 정제시켜 주며, 이제껏 물욕으로 갈구하던 많은 것들이 모두 허상임을 넌지시 일깨워 주는 집. 이런 집에서 살면 세상사로 혼탁해진 정신과 몸이 위로받고 정화될 수 있을 것 같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요술 보따리처럼 갖고 싶은 것이 많았던 지난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불을 쫓는 불나비처럼 맹목적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단순 명료한 젊음이 그립기도 하고, 그 젊음을 거의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 소진해 버린 어리석음에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강물은 젊음을 거두어 가면서, 인생을 위로할 작은 선물들도 주고 간다. 봄 볕의 작은 들꽃이 내 입에서 탄성을 끌어내고, 지는 해의 석양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언제나 밤하늘에 떠있었건만 쳐다볼 줄 몰랐던 달이 새삼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밤하늘 별들을 보며 넓은 우주의 한 구석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점지되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인연에 가슴 뭉클해지기도 한다.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갖지 못하면 어떠랴. 이젠 그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도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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