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못생긴 손이 부끄럽지 않다
외국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갔을 때였다. 자동출입국심사대 스캐너에 지문인식을 위해 오른손의 검지를 갖다 대었다. 지문을 인식할 수 없으니 다시 절차를 시도하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뜨는 것이었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보아도 역시 지문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행들은 이미 심사대를 별일 없이 쉽게 통과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난처하게도 다시 줄을 서서 별도의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후의 외국여행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재연되고는 했다.
아마도 손을 쓰는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닳았을 거라는 스스로의 추측에 다른 일행들은 물론 남편조차도 코웃음을 치며 억측이라고 놀려댔다. 하지만 내 오른손의 지문이 닳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나의 손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네 손은 참 게으르게 생겼구나. 이렇게 긴 손가락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적인 기질을 갖고는 있지만 보통 아주 게으르다는데 네 손이 딱 그런 손이구나.”
손을 보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대로 생활을 위한 억척스러운 노동은 길고 섬세한 손을 가진 나와는 아무런 공통 인수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손을 바라본다. 여자 손 치고는 크고 우람하다. 손마디는 어느새 남자 손처럼 굵고 투박하며 심지어는 곱아서 휘어지기도 했다. 핏줄도 툭툭 불거진 손등의 피부는 거칠고 건조한 것이 추운 겨울 날씨에는 가끔 터서 생채기가 생기기도 한다. 요즘 너무나 흔해 빠진 네일숍을 구경도 못해 본 내 손톱들은 투박하게 잘린 순박한 모습으로 노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자신의 길이에 만족할 뿐이다. 어머니가 내 손을 보며 말씀하셨던 가늘고 긴 예술가의 섬세한 손과는 정반대의, 노동자의 손,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한 투박하고 가엾은 손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학부모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한 학부모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손을 보니... 집안일을 참 많이 하시나 봐요? 일을 아주 많이 한 손이네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손을 감추며 반사적으로 그 학부모의 손을 보았다. 손톱이 알록달록 매니큐어로 잘 단장된 하얗고 가는 손가락들이 그 주인의 무례함과 무신경함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난 그런 가늘고 하얀 게으른 손이 싫다. 어떻게 어머니로서 살아온 손이 가늘고 하얀 섬섬옥수일 수 있단 말인가. 기저귀를 씻어 삶고, 음식을 장만하고, 집안을 쓸고 닦으며 정원의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교복과 셔츠를 다리고, 나이 든 부모와 어린 자식을 돌보고, 명절엔 송편과 만두를 빚고, 심지어 밤사이 내린 눈을 출근길 식구들을 위해 일어나자마자 비로 쓰는 어머니의 손은 섬섬옥수일 수 없다.
어머니도 자식에 대해 잘 모른다. 남편도 아내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나도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손은 나에 대해 잘 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언한다.
내 손은 말한다.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노동을 사랑하고, 돌봄을 받기보다 돌봐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가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절대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겨울 날씨가 매서운 오늘, 집안에서 모처럼 한가하다. 늦은 나이에 배운 현악기 연습과 도자기 만들기에 나의 손은 또 분주해진다. 난 지문도 닳은 나의 못생긴 손에게 오늘도 또 빚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