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예수
간밤 사납게 퍼붓던 비로, 도시의 거리는 막 씻은 얼굴처럼 깨끗하다. 새로 짠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하늘엔, 멋 부리기 위해 일부러 몇 개 걸어 놓은 듯 솜털 구름이 떠 있다. 대기는 미풍을 안고 가볍고 청량하게 살랑이고, 물기를 머금은 가로수의 푸른 잎들은 한가롭게 흔들리며 초여름의 태양 빛을 반짝반짝 반사하고 있다. 늘 놓여 있던 거리 위 벤치, 지나는 행인들도 날씨가 빚어낸 풍경화의 일부분이 된다. 모처럼 이 도시의 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잘못 그려진 그림 같은 한 사람이 떡하니 서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 어깨까지 자란 머리칼과 얼굴을 덮고도 턱 아래 한 뼘 남짓까지 늘어진 수염은 어디까지가 머리칼이고 수염인지 구분할 수도 없이 먼지와 땀으로 뒤엉켜 있다. 초여름의 더위에도 누더기가 다 된 겨울용 잠바 안에 또 다른 누더기 셔츠를 여러 개 겹쳐 입고, 등에는 보잘것없는 물건들이나 담고 있을 법한 넝마 같은 배낭이 얹혀 있다. 장난처럼 과장되게 마구 그려 넣은 것 같은 주름이 덮고 있는 이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고 땟국물로 찌들어, 웃는 것인지 찡그리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그 표정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주지 않는다.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그로부터 풍기는 악취를 피해 에워가는 행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가운데에 정지 화면처럼 서 있는 사람. 허옇게 마른 침이 꾸덕꾸덕 엉겨 있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그는, 오랜만에 맑게 개인 하늘을 넋을 잃은 듯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극적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만인 듯, 행인들은 그를 피해 갈 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길 위의 인생이라고 불려도 좋을 그는 어떤 비극을 갖고 있을까? 태생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인생인 걸까? 깨어진 가정, 경제적 파탄, 좌절된 야망, 보상받지 못한 헌신, 무능력과 무책임, 아니면 방탕과 방종이 그를 길 위의 삶으로 내몰았을까? 빌딩 숲 후미진 구석 잠자리에서도 추억과 회한이 그를 괴롭힐까? 내일 하루를 연명하게 해 줄 음식 걱정에 이 궁리 저 궁리 잠 못 들까?
그런데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던 얼굴 위, 더러운 수염에 반쯤 가려진 채 벌어진 그의 입술이 헤벌쭉 희미한 미소를 만든다. 언젠가 불상이나 성모상에서 보았던 것 같은, 알 듯 말 듯 한 그의 미소가 나에게 대답한다. 길 위 삶을 살게 된 사연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집도 재산도 잃어버렸듯, 추억이나 회한 같은 것도 길 위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 사랑도 미움도 고독과 바꿔버린 나는 가족도 친구도 원수도 없다. 하늘을 나는 새와 들녘의 나리꽃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듯 내겐 걱정할 내일이 없다. 오늘 같은 날, 하늘을 보면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잊는다. 나는 공기처럼 자유롭다.
연민과 동정으로 그 사람에게 눈을 떼지 못했던 나는, 해괴한 그 미소에 섬찟 놀라, 그와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얼른 시선을 감추고 서둘러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