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하소서

눈물을 흘리는 이여, 복되도다.

by 지니



쪼그려 앉은 채 고개 숙이고 있는 젊은 남자. 얼굴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망울이 어미 잃은 어린 노루처럼 무방비한 표정이다. 소리 없이 내려앉는 이슬비가 그의 속눈썹에 방울방울 매달린다.


집 가까이에 있는 동네 놀이터에는 죽단화 관목 군락이 있다. 매해 봄마다 이곳에 죽단화가 피면, 나는 정원용 가위를 갖고 가서, 꽃가지 한두 개를, 보는 사람 없을 때 몰래 잘라 온다. 가지 하나에도 여러 개 샛노란 황금빛 겹꽃들이 작은 방울들처럼 간드랑간드랑 매달려있다. 아끼는 검은색 도자기 화병에 꽂아 식탁 위를 장식하면 북향 다이닝 룸이 불을 켠 듯 환해진다. 어느새 나만의 봄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4월의 어느 봄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올해도 죽단화가 폭죽을 쏜 듯 꽃망울들을 터트려 보잘것없는 동네 놀이터를 샛노랗게 밝히고 있었지만, 낮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슬비를 맞고 있는 놀이터엔 노는 아이 하나 없었다. 뒷짐 진 손에 정원용 가위를 들고 빗속에서 어슬렁어슬렁 죽단화 관목을 둘러보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홀로, 찬란한 봄꽃 앞에 서 있는 마음이 묘했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더욱 슬프고 외로운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병들어 아름다움 앞에서도 슬프고 외로운 걸까, 두서없는 사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어디선가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린다. 헨델의 ‘나를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가 아주 작은 소리로 이슬비와 함께 떠돌고 있었다. 자른 꽃가지 두 개를 손에 든 채 놀이터를 둘러보았다. 분명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노랫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미끄럼틀 뒤로 내 시선을 피해 살며시 숨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다친 길고양이가 사람의 시선을 피해 후미진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모양새 같았다. 비탄에 애끓는 소프라노 노래가, 공기 중에 부유하다 천천히 떨어지는 이슬비 속에서 더욱 처연하게 들렸다.


누굴까, 얼마나 슬프길래 ‘나를 울게 하소서’라는 제목만 들어도 울컥 마음이 미어지는 노래를 틀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아무도 없는 놀이터 한 구석에 홀로 있을까. 상처 입은 동물에게 하듯 조심스레 그에게로 다가갔다.


“말 걸어도 될까요?”

쭈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젊은 남자가 창백하고 여윈 얼굴을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비에 젖어있는 머리칼 아래 붉은 눈두덩이가 몹시도 슬퍼 보인다. 그의 속눈썹에도 내 속눈썹에도 이슬비가 방울방울 내려앉는다.

“너무 슬퍼 보여요.”

“네.”

“이 꽃 예쁘지 않나요? 집에 가져가려고 두 가지를 꺾었는데, 하나 가져요.”

“꽃이 너무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슬픈 이를 홀로 비탄에 잠기도록 빗속에 남겨둔 채, 점점 멀어지는 아리아 선율을 뒤로하고 손에 남아 있던 꽃가지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슬퍼하는 이, 애통하는 이, 눈물을 흘리는 이여, 복되도다. 슬픔이 그대를 동정하여 그대를 고통의 사슬에서 풀어줄진저. 완고한 자아에 갇혀 흘리지 못하고 삼켜 버린 눈물이 오랫동안 긷지 않은 우물처럼 말라 버린 나는, 어느새 가랑비가 되어 얼굴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눈물 삼을 뿐이다. 축제처럼 찬연한 이 계절, 나는 진정 눈물의 위안을 찾아 ‘양파 주점’에 가고 싶다.




* 양파 주점 :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대표작 ‘양철북’ 속 배경 장소 중 한 주점의 이름. 양파주점에서는 술과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울지 못하는 입장객들이 양파를 썰다가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한다.

* 헨델의 ‘나를 울게 하소서’: https://youtu.be/PrJTmpt43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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