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여, 만세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개와 고양이처럼 다투던 동갑내기 사촌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에 왔다. 놀러 왔다고는 했지만 새로 산 자전거를 내게 뽐내려고 온 속셈이 뻔했다. 독특한 하얀색 프레임, 광이 번쩍이는 핸들바와 스티치가 되어있는 푹신한 가죽 안장만 봐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자전거였다. “이거 미제야, 미제!”라는 말을 연발하며 쌩쌩 우리 대문 앞 골목길을 왕복했다. 내 부러움을 도발하려는 자신의 의도가 성공했는지 확인하려고 힐긋힐긋 내 얼굴을 살피는 모습이 여간 얄미운 것이 아니었다.
두발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두 바퀴만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으며 매끄럽고 빠르게 달리는 그 속도감에 그만 넋을 빼앗겼다. 한번 타 보자고 하면 분명 온갖 유세를 떨며 내 약만 바짝바짝 올릴 것이 뻔한 그 속내를 알면서도, 자존심을 억누르며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얄궂은 사촌은 터무니없는 –내가 가장 아끼던 연필 한 다스를 대신 준다는- 거래로 자전거를 딱 한 번 시승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바람을 가르며 멋지게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조금 가다 비틀비틀 몇 번 넘어지기가 무섭게 사촌 녀석은, 비싼 자전거를 넘어뜨린다며 내 연필 한 다스를 고스란히 챙긴 채, 그 ‘미제’ 자전거를 낚아채듯 타고는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며칠 동안이나 자전거 병에 걸려 부모님을 졸라댔다. 하지만 끝끝내 자전거를 갖지 못했고, 어린 시절 이루어지지 못했던 바람은 ‘두 바퀴’에 대한 선망과 집착으로 이어졌다. 길을 가다 세워져 있는 자전거나 스쿠터, 오토바이를 보면 슬쩍 안장에 앉아보는 깜찍한 악습이 생길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오래 묵은 소망을 피력하며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고 싶다고 했다가 아버지의 벼락같은 호통에 혼쭐이 났다. “아스팔트에 넘어져 얼굴이라도 긁어서 별당 아씨*라도 되고 싶은 것이냐!”
(* 1976년 TV 인기 드라마 제목. 고전 소설 ‘박씨전’을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 베일로 추한 얼굴을 가리고 사는 주인공 별당 아씨는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지만 초인적 능력으로 가문과 나라를 구함.)
연애 시절, ‘두 바퀴’에 대한 오래된 소망은 연인에 의해 드디어 실현되었다. 철없는 연인은 생일 선물로 99cc 대형 스쿠터를 선사했다. 부모님 모르게 집 차고 안에 몰래 숨겨둔 스쿠터를 꺼내 타고 짜릿한 흥분을 만끽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까지 이 스쿠터는 우리와 함께했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불같은 호통이 바로 나의 마음이 되었다.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두 손안에 어린 새를 감싸 안 듯 아이를 키우던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스쿠터는 차고 안에서, 내 마음속에서 먼지 쌓인 고물이 되었다.
‘중년’은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 무리하지 않는다면 경험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이유로 야외에서 할 만한 운동 거리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랜 시간 봉인되었던 ‘두 바퀴’에 대한 나의 소망이 다시 소환되었다. 나이 든 이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허락 없이도 값나가는 미국산 최고 브랜드의 근사한 자전거를 살 것이고, 주변 누군가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대도 개의치 않고 그 ‘두 바퀴’에 올라타 바람을 가르며 달릴 것이다.
자전거로 처음 달린 거리가 집에서부터 인천 아라뱃길까지 왕복 100km였다. 속도를 더할 때마다 뺨과 팔을 스치는 바람의 상쾌한 마찰력과 페달을 밟을 때 느껴지는 근육의 긴장감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물결마다 은빛 물고기가 하나씩 뛰어노는 듯 오월 말의 햇살을 반짝반짝 반사하는 한강과 그 강을 따라가는 자전거 길에 드리워진 녹음은 말라버린 도파민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완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성취감과 새로운 경험이 주는 스릴에 도취되어, 심장 속에 백만 마리의 나비가 펄럭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 번째 라이딩에서 아버지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시속 20km 속도로 달리던 도중, 콧등으로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끌어올리려 오른손을 핸들바에서 떼는 순간, 머리부터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로 곤두박질쳐졌다. 잠시 아무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고, 일어나라고 뇌가 명령해도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를 목격한 라이딩 족들이 넘어져 쓰러진 나를 둘러싸 웅성거리고, 뒤따라오던 남편은 내 목이 부러졌을까 패닉 상태가 되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 보려고 애를 썼다. 풀려버린 다리에 끙 힘을 주고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섰다. 그제야 얼굴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고 119 구급대원이 도착해서 인근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뼈나 신경계통의 손상이 없었다는 것이 감사할 만큼 운이 좋았다. 오른쪽 얼굴 전체가 턱부터 광대뼈까지 넓은 찰과상을 입었고, 광대뼈에 2cm의 열상이 있었다. 아버지 예언대로 근 두 달을 ‘별당 아씨’처럼 얼굴에 드레싱을 하고 지냈다. 광대뼈 위의 흉터만 빼고 사고의 흔적은 사라졌다. 나는 이 흉터를 ‘영광의 상처’라고 부르며 농담하는 것이 즐겁다.
자전거를 탄 지 곧 1년이 되어간다. 30년 전, 겁도 없이 99cc 스쿠터를 선물했었던 나의 오래된 연인은 이제는 내가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힐긋힐긋 뒤돌아보며 내 앞에서 달린다. 아카시아꽃 향기를 담은 오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 Viva la v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