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버디와 리키를 기리며

by 지니

집 담장 밖 골목길을 비로 쓸고 있는데, 북슬북슬 흰 털이 꾀죄죄한, 몸집이 진도견 보다 조금 더 큰 개 한 마리가 지나간다. 혀를 옆으로 내 빼물고 세상이 신기해 죽겠다는 듯 흰 털에 덥수룩 덮인 검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내달린다. ‘집 잃은 개인가? 저리 다니다 지나가는 차에 치이면 어떡하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비질을 다 끝내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흰털 북슬북슬한 녀석이 어느새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우리 집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 않은가.

“야, 꼬마! 니네 집 어디야? 너 여기 왜 왔어? 배고프니? 목마르니?”

남의 집을 무단침입하고도 천연덕스럽다. 우리 집 정원을 지 집 안방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구석구석 뛰어다니다, 오줌도 한 번 시원하게 갈긴다. 녀석은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꼬리 치며 달려와 덥석 나에게 안긴다. 침이 질질 흐르는 분홍색 긴 혀가 내 얼굴을 사정없이 핥는다. 아, 이런 어이없는 녀석. 허파에 구멍이 나 바람이 빠지는지 실실실 웃음이 계속 나온다.

이 녀석을 어쩐다. 그냥 내보내면 골목길에서도 서행할 줄 모르는 무지막지한 차에 치일 위험도 있고, 그렇다고 주인이 있는 개가 잠깐 가출했을 수도 있는데 대문을 닫고 나가지 못하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대문은 닫지 않을게. 너 나가고 싶으면 나가. 하지만 나가기 전에 밥은 먹고 가라.”

녀석이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상관없다. 어차피 이 대사는 조금이라도 이 녀석을 붙잡고 싶어 하는 심산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니까.

흥분으로 신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헐레벌떡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작년에 죽은 우리의 반려견 리키의 몫이었던 개 간식과 사료를 가지고 와 녀석에게 준다. 이 녀석, 경계는커녕 고맙다는 표시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잘도 먹는다. 퍼다 준 물도 한 사발 마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허파가 또 구멍이 났는지 실실실실 계속 바람 빠지는 소리로 난 웃어댄다.

찬찬히 살펴보니 살도 통통하니 올라있는 것이 유기견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식표가 있는 목걸이도 차고 있지 않으니 도대체 주인을 어떻게 찾아준단 말인가. 주인을 찾을 수 없다고 이 녀석을 그냥 쫓아 낼 수도 없으니, 유기견 보호소에 맡겨야 하나. 아냐, 그곳에 보내면 결국 안락사당할 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식구로 맞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이미 내 마음이 치달아 있는 결론을 따라서 그저 생각하는 척했을 뿐이다.

집 안에 있던 남편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어쩔 수 없이 이 개를 우리가 키워야 한다는 결론과 함께. 이 해프닝을 확인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온 남편에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어린애처럼, 녀석이 꼬리 치며 덥석 안겨 오두방정을 떤다. 냉정하려고 애쓰던 남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 마음을 뻔히 알기에 옷음기조차 감추려 하는 그의 입꼬리가 어느새 무장해제 된다.

“근처를 돌아다니던 개니까 집이 이 동네에 있을지도 몰라. 일단 동네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이 녀석을 데리고 가자. 동물병원에서 알고 있는 개일 수도 있고, 혹시 몸에 인식칩이 식재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만약 아니라면 할 수 없이.…”남편이 말끝을 흐린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도 내 속마음은 그럴 수 없다는 데 승률을 걸고 있었다.

우리의 반려견 버디가 죽고 나서 8년이 넘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버디의 목줄을 녀석에게 채워 동물병원으로 향한다. 녀석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향해 남편과 함께 셋이 걷는 이 길은, 우리 식구가 산책할 때 버디, 리키와 같이 했던 길이다. 남편 안색을 힐긋힐긋 살피며, 새 식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설레면서도, 곁에 있는 개가 버디나 리키가 아니라서 슬프기도 한 마음을 애써 숨긴다.

“어, 인식표가 목덜미 부근에 식재되어 있네요! 리더기로 개와 주인의 정보를 알 수 있어요. 다행이에요.” 꽤나 밉살스럽게 생긴 젊은 수의사가 말한다.

녀석 이름은 ‘연두’란다. 이름이 예쁘기도 하다. 잡종개인 줄 알았는데 올드 잉글리시 쉽독 혈통 좋은 한 살 된 개란다.

“주인을 찾아서 다행이야. 네 주인이 널 찾지 못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 애를 태웠겠니...... 그래, 잘 된 거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잘 되고 말고.”

물론 이 말도 연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달콤하게 시작된 짧은 연애가 순식간 허무하게 끝났다. 연두는 가출해서 모처럼 세상 구경에 신났었는데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찾으러 온 주인 손에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돌아갔다.

연두를 보내고 대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핑 돈다.

“에이, 바보야. 왜 울어. 우리는 연두보다도 더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개들을 둘씩이나 키웠었잖아.”

어느 날 날아와, 날개를 안 보이게 겨드랑이에 꼭꼭 숨기고 우리와 가족이 되었던 버디와 리키는 숨겨 두었던 날개를 꺼내 펴고 천사들이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 주고, 기다려 주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온몸을 바쳐 우리에게 진실했던 버디와 리키가 오늘따라 더 그립다. 그리운 마음과 비례해서 자책과 회한이 날 선 송곳처럼 나를 괴롭힌다.

천국이 있다면 언젠가 버디와 리키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천국은 천사들만이 사는 곳이니까, 나의 자리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 누구도 하늘 아래서는 구할 수 없는 천사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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