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좀 잡아 줄래요?

성탑에 갖힌 라푼젤의 독백

by 지니

입고 왔던 속옷까지 모두 벗고 분만 가운만 걸친 채, 어머니와 남편을 등 뒤로 하고 분만대기실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다. 홀로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SF 영화 속 우주인처럼 두려움에 가빠진 내 호흡소리만이 들렸다. 8시간 동안 이어진 산통이었건만 들어줄 이 없는 비명인 줄 알기에 속으로 삼키며 참아냈다. 고통을 나눌 이가 곁에 없다는 고독함이 산고(産苦)를 배가시켰다. 분만 직전 진통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간호사들 중 한 사람에게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가 된 채 흐느끼며 말했다. “내 손 좀 잡아 줄래요?”

몇 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성당으로 향하는 순례 여행을 했었다. 올여름, 그 순례길 인연으로 가끔 만나던 사람들과 1박 2일 일정으로 안면도의 한 농막에서 모였다. 비가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불안정한 기상, 너 댓 시간이나 소요되는 자동차 운전, 특히 별로 쾌적할 것 같지 않은 농막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무릅쓰고 무슨 대단한 거사라도 치르기 위한 것처럼 미리 약속한 대로 모두 모여들었다. 같은 여행길에 함께 있었다는 것 말고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그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거지로 추측하건대, 평생토록 남의 원망이나 빈정 살 일 없이 곧이곧대로 살아왔을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 흥청망청 놀아 본 적도 멋대로 살아 본 적도 없는 답답하고 재미 모르는 사람들이 유유상종 같은 물고기 떼처럼 모였다.

늦저녁 바닷가 옆 농막 마당에서는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구이와 서로에게 권하는 맥주잔이 간간한 웃음과 함께 오갔다. 노안에 더해 취기로 눈이 더 침침했건만 그중 한 사람인 아마추어 시인의 자작시를 돌아가며 낭송했다. 시흥(詩興)과 취기로 어느새 홍조 띤 얼굴들은 중년을 넘어선 세월의 풍화로 무덤덤했던 표정을 벗어던지고 기쁨도 슬픔도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아이 눈망울을 달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왁작대는 웃음과 함께 소환되고, 풀지 못할 마음속 옹이를 갖고 떠났던 순례길 사연이 구멍 난 자루처럼 흘러나왔다. 화덕 불씨가 사그라들 때쯤 사연마다 모양을 달리하는 회한과 그리움, 쌉싸름한 애잔함이 후드득 비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밤바닷가 술자리를 망령처럼 떠돌 때, 무리 중 한 사람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밀려오는 감정이 터져 나올까 두려워 입을 힘주어 닫은 채...... 취기를 빌미 삼아 함께 두 손을 맞잡을 수도 있었건만 덥석 잡힌 내 손은 의수(義手)처럼 어색했다.


비꽃은 어느새 소나기로 변했고 알싸한 취기에 용감해진 사람들은 썰물로 저 멀리 밀려간 밤바다를 향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해변을 거닐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처럼 해변에서 춤을 출 수도 있건만, 이 소심한 무리엔 아무도 조르바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이가 없다. 차가운 빗줄기에, 살짝 들떴던 취기가 물러가자 밤바다를 덮고 있던 암흑 속에 각자의 고뇌를 살며시 다시 감추고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먼 길을 달려갔을까? 결국 사람이 그립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밤하늘 수많은 별들이 하나하나 탄생과 소멸의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말로 다 못하는 사연을 손을 맞잡으며 서로 위로받고 다독거려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관과 자의식의 벽돌로 완고한 성을 쌓고 라푼젤처럼 성탑 꼭대기에 고립된 채 남의 손을 잡지도, 잡아 주지도 못했다.

다음엔 내가 먼저 말하리라. “내 손 좀 잡아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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