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춤-4

by 섷잠몽


아이는 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알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는 혼자 결과를 듣기로 했다. 남편의 친구는 고개짓으로 인사를 한 뒤 모니터를 봤다. 야외활동이 찾았는지 피부가 그을려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리다 다짜고짜 몇 가지를 질문했다. 아이의 식습관이나 섭취음식 같은 걸 물어왔다. 마지막에는 화학주기율표에 나올 법한 이름이 나왔다. 엄마가 모르는 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눈여겨 보는 눈치였다. 엄마는 그 자리가 몹시 불편해졌다. 그의 의중을 살피려 그를 쳐다봤지만 컴퓨터의 소음만이 돌아왔다. 얼마 뒤 그가 환자용 모니터를 켜고 사진을 보라고 말했다.


“전부 아이 사진이에요. 처음이 내시경 사진이에요. 처음 내원했을 때. 수술 직후. 마지막이 수술 후 한달. 그 다음 것이 씨티고, 똑같이 내원 당시, 수술 직후, 수술 후 한 달.”

“그런데요?”

“그리고 마지막 사진 두 장이 저번주에 민석이가 아이랑 왔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진석은 남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남편한테 들은 얘기가 없는데요?”

“아직 말을 안 했나 보네요. 저를 찾아왔을 때 검사할 시기가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물었죠. 아이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혹시 몰라 검사를 했죠. 보시는 것처럼 상태가 더 심각해졌어요.”


그는 다시 사진을 보여줬다. 최근 찍은 사진이 확연히 안 좋았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부위가 썩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진석이가 이상한 얘기를 하더군요. 약물 반응 검사 해줄 수 있냐고요. 약물 반응 검사를 받겠다니 처음엔 이상했죠. 하지만 진석이 말대로 검사했고 오늘 결과가 나왔어요.”


엄마는 손 안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검사 결과지를 내민 의사는 말을 이었다.


“깨끗합니다.” 의사는 헛기침을 하고는 곁눈질로 엄마를 보았다. “이상하시죠? 저도 결과를 받고 믿을 수 없었죠. 아이는 단 한 번도 약을 복용한 적이 없었어요. 제수씨.”


엄마는 식은 땀을 닦았다. 판사 앞에 앉아 판결을 기다리는 피의자가 된 기분이었다.


“진석이는 아무래도 제수씨를 의심하는 것 같아요.”

“저를요? 무슨 근거로요?”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오늘 진석이한테 와달라고 했는데 제수씨를 보낸 걸 보고 이상하다 싶었죠.”


엄마는 그가 물었던 것들을 곱씹었다. 아이는 항상 엄마와 같이 있느냐, 밥은 누가 챙겨주느냐, 약 먹는 건 잘 확인하느냐, 입 속까지 확인하느냐. 그때 햇빛을 받아 맑아진 노란빛이 떠올랐다. 아이의 손에도 입에도 약은 없었다. 뱉는 동작도 없었다. 병실 밖에 아이가 두고간 가방이 있었다. 엄마는 진료실을 뛰쳐나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해외 출장에서 사다준 염주, 무용곡이 들어있는 MP3. 아이의 물건들이 하나씩 벤치와 바닥에 던져졌다. 그 소리에 모두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어둠속에서 출렁이는 그것을 끄집어 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자 코 속으로 역한 내가 진동했다. 머리를 어지럽힐 정도로 강한 향이었다. 아이는 물을 마신 게 아니라 약을 뱉은 것이었다.


당장 아이를 찾아야 했다. 아이가 입원했던 병동으로 길을 잡았다. 당시 담당 간호사가 보이자. 엄마는 우리 아이를 봤느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한 두 시간 전에 아이가 찾아와 여자아이와 외출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다급하게 발을 굴렸다. 간호사는 여자아이가 병원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며 공원으로 가보라고 일러줬다.

병원 부지에 있는 공원으로 가려면 홀을 거쳐야 했다. 위태롭게 메달린 조명들이 낮의 홀을 밝혔다. 창밖으로 잿빛 구름이 보였고 하늘이 보이는 천장때문에 조명빛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 같았다. 공원으로 가는 문 앞에 공연 무대가 있었다. 공연은 끝난 상태였다. 엄마는 무대를 가로질렀다. 줄지어 있는 플라스틱 의자와 마주했을 때 여자아이와 있는 아이가 보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며 추궁을 해야 할까. 아이가 순순히 대답은 할까. 때려서라도 말하게 할까. 아이는 그것이 독극물인 줄 알았을까? 몰랐다면 누가 준것일까. 알았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었다. 엄마가 물어볼 말은 자명했다. 누가 줬냐.


엄마는 빈 숨만 내쉬었다. 곧 아이도 엄마를 발견했다. 아이의 얼굴에서 놀람과 실망이 차례로 드러났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홀에 시선이 많았다. 그들이 보낼 따가운 시선에 엄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옆에 여자 아이도 거슬렸다. 엄마는 여자애를 곁눈질했다. 그때 굳이 아이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녕.”

“안녕하세요.”


여자아이는 주눅들었다.


“아줌마가 물어볼게 있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 뭔지 알지? 우리애는 네가 줬다고 했는데 맞지?”


엄마는 들고 있던 물병을 보여줬다.


“아니요. 몰라요. 오빠가 저한테 먹을 걸 줬는데 그냥 친해서 그런 거에요.”


엄마는 아이의 겁먹은 표정을 보았다. 주위를 살핀 뒤 부드럽게 아이를 대했다.


“아줌마는 오빠가 너한테 뭘 줘서 혼내려는 게 아니야. 혼내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고.”

“정말요?”

“그럼.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아는대로 말해줄 수 있지?”

“네.” 여전히 여자아이는 엄마를 경계했지만 엄마의 눈에 누그러지는 두려움이 보였다.

“이거 알아?”

“네.”

“그럼 네가 줬어?” 엄마는 진실에 한 발짝 다간듯 긴장했다.

“아니요. 그 물병은 오빠가 항상 들고 다녀서 알고 있어요.”

“아니 아줌마 말은 이 물통을 네가 줬냐는 거야.”


여자아이는 플라스크 속 실험체를 보는 것처럼 올려봤다. 엄마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준 게 아니에요. 오빤 절 만날 때부터 갖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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