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 한 방울. 빗방울이 유리 천장에 부딪혔다. 그 소리는 점차 강하게 퍼졌다.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엄마는 의문과 절망 가득한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뻣뻣한 다리만 앞뒤로 휘저으며 공연히 땅만 보았다. 엄마는 혹시나 아이가 어떤 답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침묵만 돌아왔고 가슴만 먹먹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거 뭐야?”
엄마가 물었다. 침묵.
“약 왜 뱉었어?”
침묵.
“왜 그랬어? 왜 안 먹었냐고?”
침묵.
엄마는 아이의 언어가 비정하고 무서웠다. 아이가 벼린 침묵은 아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말해! 왜 거짓말 했어, 이유가 뭐냐고!
엄마는 아이를 마구 흔들었다. 가녀린 동물이 손아귀에서 나풀거리듯 아이가 휘청였다. 그럴수록 엄마는 한 줌도 되지 않는 몸을 바스러뜨리고 싶었다. 손에 잡히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실체를 드러냈기에 그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야 했다. 고통으로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 아이가 입술을 뗐다.
“왜 그랬어?”
“뭐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 왜 그렇게 굳어 있어? 불감증 환자야? 못 느껴? 황홀하게 하라고!”
“왜 그랬어? 거의 다 왔잖아. 이제 완성이라고. 맞아야 할래?”
“춤춰, 춤춰, 춤춰, 춤춰, 춤춰. 죽겠다는 생각으로 돌아. 죽고 싶다고 느껴질 때까지 뛰어.”
“돌아 돌아 돌아 돌아. 머리 쓰지마. 몸에 맡겨. 흐르는 대로 따라가. 거세된 사람이 아니라 진짜 느끼는 것처럼 몸을 맡기라고!”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웅변하듯 말했다. “뭐가 문제야. 불만 있어? 그럼 때려치던가 때려치면 죽는 거야!”
소리를 지르고 아이는 엄마를 한참 쳐다봤다. 엄마는 겁이 났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있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아이는 엄마 앞에 섰다. 핏대 선 선홍빛 눈이 선명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말이지? 그렇지?”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당황했다. 아이의 숨 하나하나가 세어질 때마다 어떤 순간들이 스쳐갔다.
“기억하지? 예전부터 엄마가 해왔던 말들이야."
아이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왜 마셨냐고? 완벽해지는 걸 엄마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아이의 목소리가 홀을 메웠다. 아이는 메아리친 목소리를 뚫고 뛰쳐나갔다.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당혹감이 밀려와 목구멍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머리가 멍했다. 여자아이가 아줌마라고 부르자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아이를 쫓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엄마는 감을 잡지 못했다.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혼란만 남긴 채 쓸려갔다. 아이의 비난. 그것들이 모두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자신을 앞지른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그 말들을 돌이켜 생각했다. 훈련 중에 아이를 윽박질렀던 말들. 남편을 분노케했던 아이를 향한 태도.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훈련과 연습, 강인한 정신만이 살아남는 세계였다. 강경한 말들과 단호한 태도가 없었다면 아이는 무용수로 클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당연한 규칙이었다. 엄마로서도 아이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 진실이 무엇이냐. 엄마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물어야 할 한 가지.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아이를 따라 밖으로 나가 공원이 나왔다. 넓직한 잔디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붙잡으러 갔을 때 아이의 흰 신발은 잔디와 돌담길 경계에 놓여있었다. 엄마는 아이가 있는 곳, 공원의 중심, 잔디밭 한가운데로 갈 수 없었다. 꼼짝없이 아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을 뿐.
아이의 몸이 희미하게 가물거렸다. 어미의 뱃속을 헤집고 나오려는 아기처럼 웅크렸던 몸이 기지개를 펴려 했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아이는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박자만이 귀와 공간을 채울 때 아이는 발 끝에서 시작해 어깨를 들썩였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가야 했다. 붙잡고 끌어내고 심문해야만 했다. 하지만 발을 뗄 수 없었다. 서 있는 그 자리에 차게 빗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직감했다. 지금이어야만 된다고. 아이가 춤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엄마는 아이에게 가는 일도 비를 피하는 일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가지만 남은 앙상한 뒷모습.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박자만 있던 비루한 모습에 선율이 더해지고 선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의 팔이 부드럽게 펄럭인다. 몸은 팔의 날개짓을 지탱하지 않는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면서 팔을 따라 움직인다. 아이가 뒤를 돌아 엄마를 마주했지만 안중에 없었다. 아이는 가슴께에서 출발해 달을 그리듯 양팔로 공중에 원을 그린다. 팔이 내려오고 아이는 달리기 시작한다. 잔디는 베니타치오의 연인이 뛰놀던 무대가 되었다. 그녀가 늘 꿈꾸고 함께 하던 무대였다. 아이는 그녀처럼, 때론 그녀가 되어 발돋움한다. 아이는 그 나이에 걸맞는 연기를 해냈다. 그것은 성장한 몸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긴장했다. 어깨가 들리고 배는 잔뜩 위로 올라 힘이 들어갔다. 홀 안에서 사람들이 아이의 춤을 구경했지만 엄마는 알아채지 못했다. 엄마는 비에 젖은 손을 내려봤다. 심하게 떨렸다. 아름다움 앞에 섰을 때 엄마는 손을 떨었다. 하지만 이제 막 젊음을 표현한 연기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대였다.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해서도 안될 삶. 곧 노인이 되어 춤 출 아이를 향한 흥분이었다. 그 불안한 유희 속에서 엄마는 숨죽였다.
호기롭던 박자와 단조롭던 선율에 화음이 더해진다. 아이는 죽음을 깨달아 실망한 노파를 연기하려 한다. 이제 남은 건 공간감이었다. 노인의 몸은 하나의 그릇이 될 것이다. 탄생, 기쁜, 이별, 슬픔. 노인은 그것들을 담아내려고 여지껏 살아왔다. 이제 그 그릇에 죽음을 채우고 완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곡 초반, 부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요소들이 하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절도 있지만 끊기지 않고, 딱딱하지만 부드러운. 그것을 향해 아이는 달려갔다.
엄마는 감탄했다. 절망을 맞이한 노인의 자괴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는 당혹감. 아이는 일그러졌다 화를 내고 화를 내다 침울해하면서 그 모든 것을 소화했다. 그때 엄마는 입을 막고 아이를 보았다.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지고 눈물이 나왔다. 벗겨진 머리. 앙상하게 말라버린 몸. 주인의 몸이 어색했는지 볼품없이 펄럭이는 가디건. 병자가 되버린 아이는 노인이었다. 볼품없이 말랐는데도 아이의 춤은 거룩했고 완전했다. 엄마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는 노인이 되려고 그것을 마셨까. 엄마는 절망했지만 마음 한켠 기쁨이 일었다. 마음 구석, 아주 작은 욕망의 공간에서. 엄마는 그것을 저주하고 싶었다. 엄마가 숨겼던 질문. 왜 완벽해지는 걸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아이는 그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노인으로 죽음과 마주했다. 모든 동작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죽는 순간까지 춤을 추고 싶다던 베니타치오의 노파. 아름다움은 죽음과 함께 있어야 된다며 베니타치오가 선물한 곡을 좋아했던 여자. 아이는 그녀가 되어갔다. 말라버린 근육으로 아이는 여자가 되었고 노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하나의 완벽이 되어 마지막을 목도하고 있었다. 엄마는 조용히 읊었다.
“라 모아르떼 뻬르 라 뻬르페치오네.(La morte per la perfezione)”
그것은 베니타치오의 곡 이름이었다. 아이는 이 곡을 꿈꾸고 상상하며 춤을 췄다.
“완벽을 위한 죽음.”
그날. 그들은 공원에 앉아 있었다. 산 중턱에 지어진 병원이라 도시 광경이 한 눈에 보였다.
“비 올건가봐.”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좀만 더 있다 들어가자.”
아이도 하늘을 올려봤다.
“근데 오빠도 저기서 공연하고 싶지?”
홀에 마련된 공연장을 가리켰다.
“아니.”
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플롯연주자가 공연하고 있었다.
“왜?”
“그냥. 보여주기 싫어서.”
“그럼 나한테 왜 보여줬어?”
“그냥. 너니까.”
여자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급하게 말을 돌렸다.
“사람들한테 안 보여줄 건데 춤 연습은 왜 해?”
“보여줄 사람이 따로 있어.”
무안한 표정으로 여자아이는 아이의 어깨를 쳤다. 아이는 아프다며 엄살을 피웠다.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인가 보다.”
“응.”
“얼마나?”
“음… 씻겨지지 않을 만큼”
여자아이는 그 말이 소중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제 완성돼?”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궁금하잖아.”
아이가 고민했다.
“곧.”
그 뒤로 둘은 오랜동안 말이 없었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질 때쯤 아이가 입을 뗐다.
“곧 완벽해져.”
“응?”
“춤 말이야. 곧 완벽해진다고.”
“그럼 좋아?”
“그럼······.”
아이는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용서 받을 수 있어.”
아이는 구름 너머를 상상했다. 구름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하늘을 날듯이 부드럽게. 아이는 마지막 춤, 완벽의 춤을 그곳에서 추고 있었다. 고통과 용서. 모두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