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것이라며 아내를 안심시킨 남편.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양주를 마시며 용서가 안된단 말을 내뱉었다. 혼잣말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너무 잘 알았다. 어설프게 봉합한 문제가 다시 터지려는 것이었다. 남편은 계속 얘기했다. 당신이 아이한테 했던 짓들이 용서가 안돼. 이번 검사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더이상 볼 자신이 없어. 방금 전까지 문제없다며 안심시키던 사람. 아내는 그가 한심해보였다.
용서가 안된다는 말. 아이를 가혹하게 대한 아내에게 분노하던 남편이었다. 그는 얼굴을 볼수록 그녀를 참아내기가 어렵다며 집을 나갔었다. 그가 호텔에서 돌아온 건 아이가 퇴원한 이후였다. 그동안 남편은 ‘용서한다.’ ‘이해한다.’는 말들로 화해를 시도했다. 아내는 변명하지 않았고 용서를 구한 적도 없었다. 남편은 찢겨진 틈을 혼자 꿰매면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를 위해 남편이 필요했다. 그래서 화해의 바느질을 두고만 봤다. 하지만 남편은 몇 번이고 자신이 봉합한 틈을 다시 찢으려 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춤을 위해서 아이에게 해왔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당연했는지. 그녀는 비난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춤 때문에 아버지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항변하고 싶었다. 아이를 사랑했기에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고.
그때 아버지는 수영장으로 오라고 했다. 의외였지만 수영 선수였던 아버지였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실내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물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다가간 딸은 어떤 운동을 하는 것인지 걱정스런 눈으로 아버지를 봤다. 순간 몸이 기울어지면서 놀랄 시간도 없이 차가운 물 속으로 빨려들었다. 물은 딸의 입 근처까지 올라왔다. 어떻게든 바로 서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짓누르는 손아귀가 딸의 시도를 번번히 방해했다. 딸은 그것이 아버지의 손이라고 바로 알았다. 그 주변엔 아버지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수영을 하던 사람들이 구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도 꺼내주지 않았다. 물을 먹고 간간히 숨을 쉬는 순간이 십 여 번 반복됐다. 더 이상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힘이 빠졌다. 그러자 거대한 팔뚝이 들어와 자신을 끄집어내는 게 느껴졌다. 마치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딸은 정신 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버지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원망과 분노의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봤다. 하지만 딸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닐까. 그래서 또 맞는 건 아닐까. 딸이 정신을 차리자 아버지는 옆에 주저 앉았다.
“기분이 어때?”
딸은 멀뚱히 쳐다봤다. 무슨 말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대답 안해? 기분이 어떠냐고?”
아버지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딸이 을 먹였다. 딸은 모르겠다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한심한 듯 딸을 내려봤다. 그러고는 저곳을 보라며 중간 레인을 가리켰다.
“수영하는 여자 보이지?”
“네.”
“어때?”
“잘하는 것 같아요.”
“그치? 왜 잘하는 것처럼 보일까? 생각해봤어?”
“아니요.”
아버지가 묵직한 손으로 딸의 뺨을 세 차례 토닥거렸다.
“부끄럽잖아. 유연하고.”
“그런 것 같아요.”
딸은 아버지가 한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수긍했다.
“여자들은 완력이 약해서 몸 전체로 수영해야돼. 팔에 불필요한 힘을 넣지 않고 부드럽게 부드럽게.”
아버지가 수영동작을 흉내냈다.
“그래야 선을 아름답게 그리면서 나아가지.”
딸은 다음 말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근데 네 춤을 생각해봐. 불감증 환자 같지 않냐? 딱딱하게 굳어서 볼품 없게. 안 그래?”
“네.”
딸은 불감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맞이해야지. 아 좋다 좋아. 부드럽게 몸에 힘을 빼고.”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가까이 했다.
“수영 처음 배울 때 몸이 굳는 애들한테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아니요.”
“일부러 물에 빠뜨려서 물을 먹이는 거야. 왜 그럴까?”
아버지의 눈이 가늘고 께름칙했다.
“죽음이 다가와야 삶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물 속에서 뻣뻣하게 굳어가는 몸을 제대로 느껴봐야 부드러운 게 뭔지 아는 거야.”
아버지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딸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람들이 첨벙거릴 때마다 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마지막에 느꼈던 것처럼 몸에 힘을 빼. 그래도 모르겠으면 느낌이란 게 뭔지 알려줄게”
딸은 아버지의 말을 상기했다. ‘죽음이 다가와야’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성장한 후에 딸은 아버지의 교육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제자였던 무용수들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 적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때문에 선수로나 선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예술이란 어느 정도 아픔과 상처를 품고 가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들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폭력을 쓴 적도 없었고 고통 속에서 제 능력을 꽃피우게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엄마였고 엄마는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