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속의 마음
어느 날부터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 앞에서는 주저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기 시작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나 활짝 피어난 꽃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형형색색 진열된 아기자기한 인형,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 같은 것들이 사진첩을 꽉꽉 채우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기를 거의 2년, 어머니가 날더러 동년배만큼 꽃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사진에 관심이 생겼다 말하기에는 꽤 애매한 열정이었다. 어쩌다 몇 번 찍었을 뿐인데 잘 나오는 것이 있으면 그걸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보정하고 만족하는 편이고, 사진이 실제로 보는 것보다 훨씬 못 나온다 하더라도 그냥저냥 아쉬운 정도다. 누군가가 칭찬을 해준다면 당연히 어딘가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나는 사진을 지나가는 시간의 기록용으로 쓰는 듯하다.
바야흐로 사진과 동영상의 시대다. 우리는 다시 마주하기 힘든 것들 앞에서는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셔터음은 끊이지 않는다. 시대가 좋아져서 요즘은 언제 어디에서 찍었는지까지 사진 한 장으로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이렇게 편리한 기록이 따로 없다. 핸드폰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진첩이 텅텅 빈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로 사진은 일상과 아주 밀접해졌다. 사람들은 어쩌다 이렇게 사각형 속의 모습에 열광하고, 또 프레임 안에 많은 것들을 담게 되었을까.
이런 현상이 부정적인 면을 가진 것은 분명하기에 많은 비판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게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남기고픈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우리는 그를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을 따라 휩쓸리고, 감정을 느끼는 모든 순간을 흘러가는 대로 떠나보내야 한다. 고분 벽화가 됐든 그림이 됐든 사진이 됐든, 인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풍경과 겪었던 경험에 대한 기억, 그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 바람을 이룰 수 있는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일 게다.
가끔 사진첩을 휙휙 넘기다 보면, 언제 이런 것을 찍었을까 싶은 것들을 마주하곤 한다. 분명 자신이 찍은 것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선 사진을 마주하면 기분이 꽤 묘하다. 한참을 보다 서서히 피어나는 기억이 하나 둘 모여 사진 위에 추억으로 완성되면 우습게도 꽤 반가운 기분이 들고 만다. 그래, 이런 것 때문에 주야장천 셔터를 누르고, 이동하는 걸음이 느려지나 보다. 나중에 들춰보고 반가우려고 저도 모르게 그곳에 책갈피를 꽂아놨나 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아쉬울 것 같은 것들은 많이 찍어둬야지 싶다. 분명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