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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연 Jul 09. 2024

이염

다채롭게 물드는 삶



 경쾌하고 발랄한 멜로디와 함께 세탁기가 멈췄다. 빨랫감을 꺼내려는데, 확인 못하고 딸려 들어간 흰 옷 하나를 그제야 보고 말았다. 하필이면 청바지며 어두운 색의 옷가지를 넣은 탓에 흰 옷에는 푸르뎅뎅한 물이 들었다. 그나마 아끼는 옷이 아니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탁해진 흰 천이 처치 곤란하다. 한 번 이렇게 물들면 되돌리기도 참 힘들지. 몇 없는 하얀 옷이 아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자주 입지 않는 색이니 괜찮다며 마음의 방향을 돌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밝은 색의 옷은 번거롭기 그지없다. 때가 타기도 쉽거니와, 무언가가 진하게 묻거나 물들면 그 이전처럼 감쪽같이 지우는 건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겨우 될까 말까다. 그렇다고 그 흔적이 티가 잘 나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뭐 그렇고 그런 이유들 때문에 혼자 살게 된 이후로는 밝은 색의 옷을 입는 일아 점점 적어졌고, 저절로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어두운 색의 옷들을 찾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편한 방향으로 타협했다고나 할까.


 비슷한 맥락으로 나의 마음도 차라리 그런 색이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무언가 물들거나 묻어도, 때가 타더라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어두운 색. 스며든 것이 상처든 사랑이든 상관없이, 어떤 것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가면 같은 색. 그런 옷을 입은 마음에서는 불편한 것들을 스스로 마주하지 않고 외면하면, 삶에서 다른 누구든 그 일을 함부로 들추지 못하니 편리하다. 그 위에 피딱지가 앉건 흉터가 생기건 눈에 띄지 않으면 적어도 강한 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동시에 하얀 마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마음은 쉽게 물들고, 쉽게 흔적이 남고, 표백제를 써서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니. 지울 방법도 없이 고스란히 남는 흔적과 기억들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는 여태, 마주해야 하는 내 마음의 모습이 지저분하게 얼룩진 모양새일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두려움은 마음에 남는 흔적이 정해진 끝도 없이 나를 뒤흔들 것을 예감했기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른다. 기억과 감정들에 흔들리고 흔들리다 어느 날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여러 가지 색이 두껍게 덧칠되고, 내 마음은 거기에 뒤덮여 질식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 하지만 마음에 입혀지는 색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농도도 성질도 변한다. 붉고 푸르고, 어둡고 밝고, 짙고 옅은 기억과 감정들. 그 염료에 두껍고 끈적한 걱정 대신 가볍고 묽은 낙관을 섞어 한 겹, 두 겹, 섣부르지 않게 천천히 색을 올린다. 그렇게 물감을 바꾸어 마음 위에 칠하는 색은 더 이상 지저분한 얼룩이 아니다. 그 아래에 물든 흔적조차 배경색 삼아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어떤 때에는 예상치 못한 빛깔을 내뿜기도 한다.


 이염되기 쉬운 하얀 마음은 바꿔 말하자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가치들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하나의 색만을 볼 수 있었던 삶은 여러 물감들을 받아들이며 그만큼 알록달록하고 빛나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주치는 많은 것들이 마음 위에 물들면, 마음의 원래 형태를 망치는 동시에 변형시키고 더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그건 이전의 내가 바랐던 대로 어두운 색의 마음이었다면 보지 못했을 이정표가 되고, 삶에서 나에게 스며드는 것들이 결코 상처와 고통만으로 매듭지어지진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이제 더는 마음의 색이 어둡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색이 뒤엉켜 물든 마음 위에 또 어떤 색들이 얹어질지 기대한다. 이왕이면 그 모양새 또한 아름답기를 욕심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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