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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연 Jul 11. 2024

유년의 흔적

[편지 3] 우리의 어린 날을 잊지 말아



 얼마 전에 길을 가다 어린 새를 봤어. 머리에 솜털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몸만 제 어미 새만큼 큰 새 있잖아. 땅에 두 발로 서서 멍하니, 움직임도 없이 있는데 보아하니 비행 연습 중이구나 싶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근처 나뭇가지 위를 쓱 훑어보니 저만치 어미새가 애가 닳아서 깍-깍- 울어대는데, 나 때문에 불안한 건가 싶어서 바로 그 자리를 떠났었어. 좀 더 볼 수 있으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덩치도 생김새도 비슷한데 어린 새들을 어떻게 구분하냐고? 어린 티가 그 솜털로만 나는 게 아니라, 행동거지에서 나기도 하거든. 보통 둥지를 떠난 지 얼마 안 된 새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질 않아서, 작은 덤불의 가지 끄트머리까지 나와서 구경하거나 바로 옆까지 날아와 앉기도 해. 작은 둥지 밖의 큰 세상에 신기한 게 얼마나 많겠어.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처음 보고 겪는 것들 투성이인지 내내 그 까만 눈과 작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해. 그 모습을 보면 걱정되면서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당장 몇 주만 지나면 그 어린 새도 세상에 무서워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니, 그런 행동은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셈이야. 얼마 안 가 어미 새가 그러했듯이, 차가 쌩하고 달려오면 미리 날아올라 피하고 사람이 다가온다 싶으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높은 곳의 나뭇가지로 올라가 모습을 감출테니까. 제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한 것이니 그런 성장이 한편으로 안심되면서도, 조금 아쉽기도 해. 그 어리숙한 사랑스러움을 못 보게 된다는 게.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있지 않아? 어릴 때의 언어나 습관, 행동을 투명한 막처럼 지니고 있는 사람들.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사람들 말이야. 마냥 사람이 정말로 어리 다기보다는, 그때의 순수함을 어느 한 부분에 지니고 있는 거지. 그건 개구진 웃음이나 발랄한 몸짓, 섬세한 표현 같은 걸로 묻어 나오기도 해. 흔히들 동심이라 말하는, 맑고 순수하고 자유롭고 뭐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가 그런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앞서 얘기한 류의 사람들은 특히나 삶의 많은 부분에 어린 시절의 방식이 영향을 미친 것이겠지. 나는 한 때 그런 흔적들을 아예 지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 어떤 행동에 서투르고 어색하면 노련하지 못하다고 질타받을 것 같았고, 순진하게 굴면 누가 나를 속여먹으려고 할까, 솔직하게 굴면 무시당할까 걱정이 태산이었지. 사회가 원하는 어른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치장하면 그런 것들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더 어른인 척 힘을 주고 살았어. 스스로의 마음은 어릴 때 그것에 가깝지만, 어색하게나마 어른의 역할을 계속해야 사회에 섞여 살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이에 맞지 않게 겁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긴 하다만.

 그러다 문득, '나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들이 거의 대부분 비슷비슷한 것처럼, 정말 멋진 어른이라는 느낌의 사람들도 사실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더라. 그도 그럴 게,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일들 앞에 서투르고, 어색하고, 실수투성이잖아. 겪어본 일이라 해도 노련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같은 실수롤 반복하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 앞에서는 그 두려움에 도망치기도 해. 생각해 보면 19살에서 20살로 변하는 그 잠깐의 순간에 누군가 마법을 건 것도 아니고, 속알맹이가 곤충이 탈피하는 것처럼 절로 탈바꿈되는 것도 아닌데, 어른이라는 명찰 하나로 모든 것을 척척 잘 해내게 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어. 아직도 어색하고 낯선 것들이 많지만, 어린 새의 마음은 잠시 한 구석에 놔두고 어른의 태도를 다듬어나가며 살아가는 거더라.


 그런 걸 보면 우리는 여전히 유년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몰라. 어린 시절을 벗어나 어른이 됐다고 믿는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 그 아이 같은 마음과 행동들이 마냥 밉지는 않아. 오히려 어설프고 서투른 것들의 사랑스러움 덕분에 웃음 짓거나 감동받는 일이 많잖아. 길가에 핀 풀꽃을 보며 한참 자리를 못 뜨는 할머니의 모습,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친구들의 모습, 모든 처음 앞에 바짝 겁을 먹은 채 뛰어드는 우리의 모습. 그렇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맑음과 서투름, 순수함을 언제까지고 가져가고 싶어. 어린 새의 머리에 채 떨어지지 않고 남은 솜털처럼, 어딘가에 남아있을 우리의 유년의 흔적들. 헐벗은 채 가장 자유로운, 그 어설픔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이니까. 그러니 우리의 유년의 흔적을 잊지 말아. 손에 꼭 쥐고 가끔 펼쳐보며 그랬었지 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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