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너머의 다음 자릿수
사람의 삶은 이진법의 1과 같다고. 어느 날 문득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생의 0에서 완생이라 예상되는 다음 0을 위해 거쳐가는 값 1.
많은 것들이 삶을 스쳐 지나가지만, 하나의 삶이 온전히 가질 수 있으면서 버틸 수 있는 값은 1조차 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값보다 무겁고 버거운 것들이 쉬지 않고 쏟아지건만, 갑자기 내던져진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만 한다.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요원하고, 베갯잇을 적시는 외로움에 잠겨 죽을 것 같아 다른 삶을 제 세상에 더해보려 애써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삶은 결코 2가 될 수 없다. 외로움을 덜어보려 다른 값을 더한 결과는 자릿수가 늘어난, 또 다른 외로움의 시작이 될 뿐이다. 우리의 고독은 삶의 영원한 그림자요, 들이마실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향기와 같아 잠시 잊을 수는 있으나 떼어낼 수는 없고, 알고 있는 것이라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결국 이를 피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타인과 관계는 일시적인 해소 끝에 더 커다란 허무감을 불러온다.
고독은 없어지지 않는다.
더하여 외로움도 늘 함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날뛰는 짐승을 잘 달래고 길들여, 이고 지고 살아간다. 떨쳐낼 수 없는 고독을 도리어 기회 삼아, 자신의 내면과 세상과의 간극을 성찰한다. 무작정 스스로가 1의 값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에 울분을 토하기보다 억지로나마 그를 받아들이고, 몸담고 있는 환경과 사회, 타인과의 관계를 관찰하고 끊임없이 파고든다. 그러면서 삶이 오롯이 혼자임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배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고독을 마주한 사람들은 외로움에 어느 정도 의연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인고의 성찰을 통해 각자 1만큼 감당할 수 있게 되는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삶이 딛고 서있는 세상은 그보다 더 무거운 값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여러 삶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1과 1이 만나, 서로의 값을 짊어지고 그 연장선에서 자릿수를 늘린다. 그렇게 모인 여러 고독은 또 다른 외로움의 시작이 아닌 유대가 된다. 자신의 그릇과 역치를 아는 것은 튼튼한 교각이 되고, 그 위에 각자의 값을 나누는 관계가 얹어져 어떤 무게도 잘 견디는 교량이 된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지독한 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때가 온다. 지금도 그 영원 같은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감히 바라건대, 그 과정이 캄캄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과 같아 막막하고 혹여나 그에 잡아먹힐까 두렵다 하더라도, 다만 지금은 1의 시간일 뿐이니 마침내 찾아올 평안과 삶에 더해질 유대를 기대하며 버텨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