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연 Jun 23. 2024

마음을 건네다

꽃보다 찬란할 웃음을 위해



 얼마 전,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오래된 타지살이인 데다 찾아가기에는 일정이 애매해, 떨어진 마음 아쉽더라도 서운하지는 말라고 본가가 있는 동네 꽃집에서 꽃을 주문했다. 일주일 전부터 그 지역 꽃집들에 전화해 색깔이며 종류며 조금은 귀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물어가며 나름의 꽃다발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원하는 꽃을 구하기에는 조금 빠듯한 시간이었던지 몇몇은 곤란한 기색을 비쳤지만, 다행히 생각하는 여건을 맞출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푸른색을 좋아하세요.

큼지막한 꽃들보다 잔꽃을 좋아하시니, 잔꽃들로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본가에 가면 어머니와 하루에 한 번씩은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꽃이며 나무며 이름을 부르고 눈길을 주느라 걸음이 더디셨다. 저건 배롱나무, 이건 화살나무. 야아, 엄마 자주 가는 암자에 꽃잔디가 되게 예쁘게 폈더라. 재잘재잘 새처럼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그중 어머니가 한참을 머무는 곳은 들꽃이었다. 토끼풀이나 사랑초, 그보다 더 작은 이름 모르는 꽃들. 몸집도 손도 조그마한 어머니의 새끼손톱보다도 작아 풀밭에 하얗게 수를 놓은 것처럼 보이는 꽃들. 크고 화려한 것보다 길가에 알게 모르게 피어있는 들꽃에 더 마음을 주는 어머니는 다행히 그 다발을 받고 굉장히 행복해하셨다.  


 내가 그랬듯이 축하할 일이 있으면 으레 꽃다발을 선물하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꽃 선물을 받는 걸 꽤 곤란해했었다. 몸만 겨우 뉠 공간만큼 마음에도 여유가 없던 그때의 나에게 꽃은 말 그대로 사치스러운 선물이었다. 굳이 살아있는 것의 허리를 잘라내어 연명하듯 숨만 붙여놓고, 금방 시들어버릴 다발을 형형색색 포장해서 주다니. 지금 생각하면 꽤 비관적인 시각이었지만 그 당시에 내게 꽃다발은 받고 나서도 어찌해야 할지 처치 곤란인 무언가였기에 그리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우연히 목격한, 전혀 모르는 타인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한 남자가 제 품에 다 안기지도 않을 것 같이 풍성한 꽃다발을 안고 서있었다. 마침 주말이었던지라 사람들이 꽤 많이 타고 있었고, 남자는 사람들 틈에서 꽃의 여린 잎이 다칠세라 아이를 안은 듯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게 뭐라고. 그저 꽃일 뿐인데. 속으로는 그리 생각했지만, 그 뒤로 누군가에게 꽃을 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사람에게는 그저 꽃이 아닌, 흠집 하나 없이 말끔히 건네고픈 마음이었던 것일 테지.


 누군가만을 위해 선물하는 꽃은 얼마 못 가 시들 것을 알면서도, 왜 늘 안겨주고 싶을까. 영원하지 않을 그 찬란함이 도리어 순간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딱이라 그런 걸까. 그게 상대방을 향한 애틋함과 같아 보여서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어도, 분명 받는 이의 얼굴에 피는 찰나의 웃음을 보고 싶어서일 게다. 꽃처럼 잠깐 걸렸다 사라지는 그 웃음이 마음에 콕 박혀 언제까지고 꺼내볼 수 있을 테니까. 아주 다음에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직접 꽃을 건네볼까 한다. 싱싱하고 고운, 말간 것들만 골라 잘 감싸서 소중한 이에게 건넨다면, 잠시 환하게 반짝일 마음이더라도 기뻐해주길 바라면서.




이전 01화 1의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