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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연 Jun 25. 2024

영원의 해파리

[편지 1] 부유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요즘 통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아. 불면증 같은 게 아니라, 자도 자도 계속 졸린 거 말이야.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도 묘하게 체력이 못 버티는 느낌이기도 해. 계절을 타는 걸까? 습하다거나 덥다거나, 그 외에도 자려는데 뭔가 하나가 거슬리면 그렇게 잠을 설치게 되잖아. 정말 푹 자본 게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푹 못 자는 만큼 꿈도 꽤 자주 꾸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아. 깨어났을 때 뭔가 정신 사납다는 느낌만 남아있지. 웃기게도 제일 최근에 꾼 꿈 중 생생히 기억나는 건 나 학생일 때 밤샘하던 꿈이었어. 하필이면 피곤한데 그런 꿈을 꿀 게 뭐라니.


 어릴 때는 뭐 그리 할 게 많았는지. 과제 때문이든 취미 때문이든, 자는 시간이 그렇게 아까워서 무엇으로든 밤과 새벽을 뜬 눈으로 보냈었어. 왜 굳이 버릇처럼 밤샘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닥치는 대로 뭐든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부채감과, 그럼에도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죄책감.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감정들을 몸과 정신의 피로와 뭔가를 했다는 자기 최면으로 잊으려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떠올리면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무얼 했는지보다 밤을 꼴딱 새운 다음 날의 감각이 어땠는지가 더 선명해. 한숨도 못 잔 밤을 보낸 다음 날은 내가 꼭 대양 속을 부유하는 해파리가 된 기분이었어. 어딘지 모르게 몸속이 텅 빈 것 같고, 내 팔다리는 허공을 허우적대는 게 꼭 내 것이 아닌 무언가가 몸에 달린 느낌이었거든.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하는 정신은 둥둥 떠다니는 몸 저편으로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거 같았고. 그때 딱 그런 생각을 했었어. 해파리가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해수면 가까이에 붙어서 너머의 넘실대는 햇빛을 바라보는 해파리. 저에게 파도처럼 밀려와 산산이 부딪히는 빛을 반투명한 몸에 한껏 치장하는 해파리.


 해파리 중에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종이 있다는 거 알아? 보통 대부분의 종들은 1년 남짓하면 수명이 다 해서 죽는다는데, 이 해파리들은 번식을 하고 나면 다시 영유아기로 돌아간대. 환경이 변하거나 다른 생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나 봐. 일생 내내 끊임없이 바닷속을 부유한다는 건 어떤 걸까? 바다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더라고, 그만큼 광활하고 드넓은 바다를 끝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가진 해파리에게는 그 시간 동안의 다채로운 경험들이 새겨지지 않을까. 날마다 바뀌는 햇빛의 무늬라던가, 돌고래들의 노랫소리라던가, 알록달록한 산호초의 빛깔이나 작은 물고기들의 군무 같은 것들. 마냥 아름답고 밝은 기억들만 있진 않겠지. 거대한 포식자에게 쫓기기도 하고, 먹이 하나 구하지 못하는 해역을 버텨야 하는 일도 있을 거야.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부유하는 건 꽤 근사할 거 같지 않니?


 다시 그 시절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부채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 감정에 얽매이고 휘둘렸어. 좋은 습관도 아닌 것을 붙잡고,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에 집착하다 보니 악순환은 계속 됐었지. 그러다 어느 순간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그 영원히 산다는 해파리가 머릿속에 떠오른 거야. 해류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의 방식. 나는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마주해 본 적이 없었더라고. 그제야 나는 피어오르는 감정에서 벗어나려 뛰어들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그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어. 우물처럼 깊이 빠지기만 할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천천히 그 감정을 소화시킨 뒤에야 나는 비로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


 진짜 해파리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따금 해파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 파도처럼 밀려드는 고민이나 따갑게 부딪혀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잠시 놓고서 내가 올라타있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거나, 몸담고 있는 해류가 이끄는 곳의 풍경과 소리, 감각들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거지. 물론 이 방식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살다 보니 가끔 그렇게 뇌도 심장도 없는 것처럼, 생경한 상황의 흐름을 맞닥뜨리고 그에 나를 맡겨야 할 때도 있더라고. 그럴 때면 영원의 시간을 떠도는 해파리들을 떠올려보곤 해. 특히나 이렇게 잠 못 드는 밤처럼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말이야. 흐름의 몸을 맡기는 게 멀리 돌아가는 길 같지만, 그 길 위에서 경험하고 마주치는 일들은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더라고. 그러니 쫓기듯이 살아가는 한 줌의 시간이라도, 가끔은 힘을 빼고 부유하자. 해류가 언제나 우리를 힘든 곳에 고여있게 하진 않을 테니, 그걸 믿고 저 위에 쏟아지는 햇빛의 결을 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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