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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연 Jun 30. 2024

쏘아 올리는 인연

당신에게 착륙해도 되나요?




 사람에 따라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곁을 지나간 사람들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만나 기적 같은 교감을 나눴던 그 시간과 얼굴과 온도를 기억한다. 혼자가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나는 특히나 그게 어떤 관계이든 더 절박했던 것 같다. 교감이 주는 안정은 중독적이었고, 나는 외로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꼭 붙들기 바빴다. 그에 질린 사람들이 곁을 떠나 옆자리가 비게 되면 그 시간 동안 내내 불안해했고, 그 뒤로 또 쉽게 이어지지 못하는 많은 인연에 자주 절망했다. 왜 사람의 인연은 길처럼 똑바른 일직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걸까. 나의 세계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자주 원망했다. 그랬던 내가 혼자라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의 세계에 뒤늦게나마 집중하기 시작하고, 인연이 도로처럼 일직선으로 쉽게 나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인 뒤부터일 것이다.

 길과 도로는 효율성에 말미암아 생겨난다. 양 끝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정하고,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측정하여 길을 낸다. 두 지점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며, 길을 내는 데에 작용하는 변수는 기껏해야 두 지점 사이에 있는 장애물 정도다. 커다란 바위라면 깨뜨리거나 들어내면 되고, 강이라면 다리를 놓고, 무른 땅이라면 단단히 다지면 된다.

 반면 인연을 잇는 일은 다른 행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일과 같다. 우주선은 지구에서 쏘아 올려져 지구의 주위를 돌며 출력을 올리다가 출력이 최대가 되면 계산된 경로를 따라 다른 행성으로 향한다. 그러다 그 행성의 궤도에 진입하면 행성의 궤도와 에너지에 맞춰 우주선의 방향을 틀고, 속도를 맞추면서 조심스럽게 착륙한다. 그 모든 과정 동안 두 행성은 각자 밟아왔던 경로 위를 착실히 움직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두 행성 사이의 변수는 무수하게 많아진다. 우주선이 서로의 표면에 와닿을지는 결국 확률의 문제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궤도를 각자의 속도로 간다. 걸어온 길만큼 다른 두 사람의 연이 닿으려면, 상대를 관찰하고 상대의 속도에 맞춰 다가가야 한다. 충분한 관심과 배려, 용기가 없으면 우주선은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다. 엉뚱한 곳에 불시착하거나, 궤도를 벗어나 떠돌거나, 아예 쏘아 올려지지도 못하거나, 경로 위에서 폭발하거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삐걱대는 관계들은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앞서 말한 조건이 맞춰지지 않아서 그리된 인연도 많겠지만, 어쩌면 조금 다른 문제인 경우도 있을 테다. 이를테면, 행성 자체가 목적지로 삼아서는 안 되는 곳이었을 수도 있고 각자의 궤도나 속도가 맞추기 힘들 정도로 달랐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 날의 나처럼 행성이 궤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우주선의 경로 자체를 만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잘못 끼워지는 관계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 수도 없다고 느껴지는 관계들. 셔츠를 입을 때 가장 위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아래까지 모두 잘못 끼워지는 것처럼, 무엇 하나가 빗나가버리면 악연이 되기도 하고, 아예 시작도 꿰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종종 곁을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게 보여준 모든 모습들이 거짓이었던 허깨비 같은 사람. 앞뒤가 다르게 행동해서 큰 상처를 남긴 사람. 첫인상과 이후의 상황이 삐걱대어 영영 연이 닿지 못한 사람. 내가 상처를 크게 줘 닿을 염치도 들지 않던 사람. 인연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삶에서도 사막의 모래알과 같이 넘쳐난다. 그렇게 원래 흘러갈 것이었다고 관조적으로 굴다가도, 아주 가끔은 '그중에 누군가는 소중한 인연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괜히 돌아보곤 한다.

 아무리 스스로의 세계가 단단해지고, 내가 가야 할 궤도가 분명해진다고 해도 여전히 인연을 잇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그렇게 확고해진 시각 탓에 앞으로 이어갈 인연에 더 까다로워지고 신중해지기도 한다. 다만, 그만큼 앞으로 나와 이어질 인연들을 생각하려 애쓴다. 바람처럼 휙 하고 지나가버릴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함께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행성에 무사히 우주선을 착륙시킬 그럴 사람들. 첫 단추를 올바른 자리에 꿰는 일은 매번 조심스럽고 겁이 나지만, 그 두려움을 걸만큼 우리가 얻는 인연은 기적 같은 일들을 삶에 더해준다. 그러니 많이는 바라지 않고, 딱 하나의 행성이라도 나의 우주선이 가닿기를 감히 바라본다. 같은 궤도로 움직이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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