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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연 Jul 02. 2024

한 귀퉁이의 고집

고집과 아집의 사이




 "언니, 언니는 그 고집 좀 꺾는 게 좋을 거야. 그거 때문에 손해 안 볼 것도 손해 보고 살아."


 5년 전쯤, 일도 잘 안 풀리고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로 신점 보러 갔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으레 점을 보는 사람들이나 철학관 사람들이 그렇듯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말투로 내 고집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기분이 나빴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신기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 게 사주에도 나오나?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한테서도 저 고집을 누가 꺾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확실히 나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싫은 건 죽어도 싫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좋은 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좋았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트러블도 잦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웬만하면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들춰내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흔히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 말하곤 하는 성격. 누군가는 그런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말했었지만, 나이가 조금씩 더 들어갈수록 이건 내가 사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아집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고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세워둔 방식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무수히 다양한 조건들과 변수들을 거쳐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내면에 세워지는 가치와 그에 따른 법칙들, 행동 방식들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마다 분야가 다를 뿐 양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곳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그런 부분이 꽤 많거나 특정 부분에서 유달리 강하면 '고집이 센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타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 힘들게 되는 것일지도.


 사람은 섬이 아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도 없고, 그게 가능하더라도 굉장히 힘들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다른 이들과 섞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다들 자신의 어느 한 귀퉁이를 계속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깎아내고 깎아내다, 나중에는 바닷가의 몽돌처럼 둥글어지는 것이겠지. 그 과정이 익숙하고 낯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나의 경우에는 그게 특히나, 그리고 여전히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그걸 '원래'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고, 이게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할 수 있는 쓸데없는 고집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식을 하고 나니 이걸 좀 누그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 태도와 행동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어차피 이렇게까지 고집이 센 성격이라면, 작은 수용의 문 하나 둘 정도 열어둔다고 세계가 흔들리진 않을 일이지 않은가.


 여전히 나는 내가 생각하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 심적으로도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마냥 놓고만 있는 것과 어려워도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기존에 내가 보지 않던 시각으로 보려고 하고, 이전에는 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행동해보고 있다. 당연히 모두 성공적이진 않다. 지난 시도들 중 어떤 것은 대차게 실패했고, 어떤 것은 나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며, 어떤 것은 두고두고 부끄러워할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깨닫고 배우는 것들이 있으며, 그 편린들이 나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켜 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직까지도 나의 많은 부분에서 고집과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알맞은 이름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건 꽤 근사한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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