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단편 소설

by 성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겠어요


"안녕?"

넋을 잃게 만드는 이유는 노을의 강렬함 때문이었는지 노을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반갑게 맞이하는 그녀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안녕? 일찍 왔네"

"오늘 리허설 연습 좀 하느라"

그날따라 유독 그녀는 너무 눈에 밟혔다. 마음먹었지만 예상보다 일찍 마주한 탓인지 자꾸 바라보게 만들었고 시선을 거둘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로 인해 키워 온 마음은 매번 놀랍고 예측할 수 없었으며 지극히 간직해 온 것 이상으로 커지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같이 있고 싶었고 만남의 끝을 아쉽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런 티를 매번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오히려 멀어지는 지름길이 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마주한 맑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빠져 기약 없이 보고 있었다. 아차 하는 마음에 그 모습이 들키지 않으려 능글맞게 말을 이어갔다.

"에이, 잘하는데 연습 안 해도 괜찮지 않아?"

"아냐, 내가 뭘 잘해"

시리도록 낮고 맑은 선율이 앰프를 빠져나와 곰팡이 핀 동방에 울렸고, 그렇게 깊은 울림은 동방의 존재를 되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사로잡혀 귀에서 미처 빼지 못해 자리 잡고 있는 이어폰을 빼며 괜히 기타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을 더 자극해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자극제라도 맞고 온 사람처럼 입이 간질거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동방을 서성거리는 그녀에 시선을 고정하고 주체 못 하는 미소와 머뭇거림이 공존하는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어제 봤다고 익숙해졌다는 오산에 그녀가 어떤 사람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는지 방심한 탓에 긴장감이 풀렸다.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매력인 그녀를 보고 있으면 구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내가 이상해졌고 이 증상에 책임을 지라고 단단히 말하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결심한 마음은 이미 그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의 발자국을 따라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한 편의 떨림과 두려움이 공존했지만 말하고 나면 그 감정을 세상을 향해 발돋움했을 뿐이고 보다 자유롭겠지 생각했다.


그녀가 동방에 어쩌다, 언제부터 혼자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가 마음같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녀를 보자 드는 수만 가지 생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쥐고 있던 기타를 더 꽉 쥐었다. 그래도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되어 방황하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지는 햇빛에 반짝여 더욱 빛나 보였다. 멀어지기 위해 했던 행동과 마음은 그녀의 인사로 한 번에 무너져 버렸고, 손으로 애써 마음을 억눌러 보았지만, 틈새로 삐져나왔다.


어느새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을 때가 많았다. 기분이 좋았고 잘 맞는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 정도로 행복한 일인가 싶었다. 걸을 때 발을 맞추려 노력하지 않아도 맞춰 걷고 있는 안정감 있는 사람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에 괜히 말을 걸었다.

"합주까진 시간 남았어. 좀 쉬고 해."

"이것만 하고 좀 쉬려고."

"언제부터 있었어?"

"음.. 한 30분? 얼마 안 지났어"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자꾸만 삐져나오는 마음이 어떻게 그녀에게 닿을지 생각도 못 했고 그 말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사정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만은 확실했다.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연습 안 해도 괜찮아?"

지금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시 친구로 돌아왔어도 일부러 좀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정말 그러기엔, 그렇게만 있기엔 힘든 상황이 왔다. 지나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고 인사도 하며 그렇게 지내려고 했는데. 마음이 벅차올라 어떤 말을 할지 고민이 됐다.


사실 마음은 멀어지고 싶지 않음이 더 강했다. 아니, 분명했다. 진하고 강렬했으며 그녀는 내 삶에 스며들어 물들여갔다. 꽤 긴 기간 동안 자라 온 마음은 이렇게 수확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맑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자 꾹 눌러온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간의 고민이 부질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연습을 다 마친 듯한 그녀가 근처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지금 연습 안 할 거면 편의점 가서 마실 거 좀 사 올래?"

"어.. 응. 그러자."

테이블에 불편한 자세로 얼마나 있었는지 일어나려고 하니 다리가 저렸다. 금세 풀린 저림을 이겨내고 뚝딱거리며 일어났다. 그녀 앞에 마주 서니 더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말하고 나면 아마 다시는 웃으며 마주할 수도 나란히 걷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말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해 온 게 그녀는 아니라고 한다면 '미안' 딱 그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더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앞장서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넌지시 말했다.

"좋아해."

"응?"

"좋아한다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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