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을까요? 마냥 좋은 그런 날이요
"나중에 방탈출 체험하러 오세요"
아침부터 활기찬 연극 동아리에서 홍보하는 소리로 잠이 깼다. 덕분에 기다렸지만 미루고 싶었던 축제날이 왔음을 실감했다. 겨우 눈을 뜨고 마주한 공평하게 나눠진 천장의 벽지 발림을 멍하니 감탄했다. 2층은 침대, 1층은 책상으로 만들어진 공간효율적인 가구에서 생활한 지도 3개월이 흘렀다. 처음엔 기숙사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담기 위한 꼼수로만 느껴졌다. 천장과 침대가 가까워 웅크려야 생활할 수 있는 삶이었지만 살다 보니(적응의 동물이어서 그럴지도) 나름 안락함이 있어 좋았다.
끼익 거리는 매트릭스 위에서 창문을 보려 몸을 구긴 채 침대 끄트머리로 향했다. 늦게 일어난 탓인지 밖은 이미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 느껴보는 축제의 공기는 들뜸보단 높았고 신남보단 낮았다. 공연 홍보를 위해 교정의 기둥이나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며 돌아다닐 때만 해도 설렘과 긴장감으로 달인 한약을 마신 느낌이었다.
창 밖에 보이는 너스레 떨며 전단지를 나눠주며 사람, 입간판을 매고 돌아다니는 사람, 부스를 설치하며 신난 사람, 판매할 꼬치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 등등. 축제 당일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긴장감을 먹고 쓴 입안에 기대감이란 사탕을 넣어 중화시키는 듯했다. 넋을 놓고 그들의 익숙하지만 새롭게 그려나가는 동선을 내려보다 무대 세팅 해야 하는 걸 잊을 뻔했다.(개미들이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탓이다)
"공지 - 오전 수업 없는 사람 무대 세팅 준비"
핸드폰이 진동으로 몸부림치며 단체 메시지를 알렸다. 축제가 다가왔음을, 오늘 첫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오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침대 옆에 간신히 놓인 사다리를 내려왔다. (거의 뛰어내린다는 표현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오전 10시 30분.
핸드폰을 건드리자 깜빡이는 화면으로 넌지시 시간을 알려주었다. 다른 룸메이트들이 일찍부터 나갔는지 방은 밖과 대비되게 조용했다. 혼자라는 자유와 고요함을 만끽하며 눈치 보지 않고 방을 독차지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괜한 머쓱함에 고요함을 해치려 공연 노래들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평소와 같았지만 미세하게 달라진 풍경 때문인지 준비하는 동안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공연을 위한 의상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던지라 제일 정상처럼 보이는 옷으로 골라 입고 밖으로 향했다.
기숙사 입구를 지나 밖으로 몸을 틀자, 듬성듬성 푸름을 내뿜는 나무와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가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벤치의 벗겨진 페인트는 얼마나 어수룩하게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제의 리허설 이후부터 밖의 공기는 미세하게 튀었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학교의 풍경이었지만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어색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양옆으로 차지하고 있는 꽤 많은 부스와 천막을 지나야 했다.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한눈 팔려 공연에 못 오더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도착한 공연장은 한적한 건물 1층에 있는 소강당이었다. 단단히 닫혀있는 갈색빛의 두꺼운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잠겨있는 줄 알았던 굳건한 문이 힘없이 열렸다.
"쿵"
소강당 안으로 발을 들이자, 누가 왔는지 소문이라도 내듯 큰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무대였다. 작을 줄로만 알았던 무대는 뮤지컬에서 본 듯한 커튼, 양옆과 중앙에 놓인 스피커, 쨍한 색감의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앞은 중앙을 가로지른 통로와 죄우측 각각 50명씩 앉을 수 있는 푹신한 붉은색 의자가(알 수 없는 무늬가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나란히 나열돼 있었다. 문 닫히는 소리에 무대 위 세팅하던 사람들이 동시에 돌아봤다. 그중 한 친구가 손을 흔들며 소강당이 다 울리게 외쳤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미안함에 손 인사를 하며 재빠르게 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분주하게 악기와 장비를 옮기고, 수음을 위해 마이크 세팅을 하느라 무대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소강당이 썰렁한 탓도 있었지만 긴장되는 마음에 손이 자꾸 굳어졌다. 공연 시작까지 여유는 있었지만 부담감은 기다려주질 않았다. 그래도 무대 설치를 하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무대를 세팅하는 건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가 가장 편하게 자기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게 결국 한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는 것이라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무대 세팅을 마치고 덩그러니 소강당의 중앙에 서서 한참 동안 무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세팅을 마치고 점심때가 다가오자 수업이 끝난 친구들이 돌아왔다.
"혼자 다 세팅한 거야?"
"아냐, 조금씩 도와주고 갔어."
"고생했어. 밥이나 시켜 먹자."
"그전에, 리허설은 바로 다 시작할 수 있는 거지? 각 팀에 세션 안 온 사람 있는지 확인해 봐."
"괜찮아, 괜찮아. 다 왔어."
"음.. 그럼 됐다"
여유롭게 밥을 먹고 쉬고 싶었지만 마음은 재빠르게 리허설을 끝내고 공연을 향해가고 있었다. 심장이 빠른 드럼 비트처럼 요동쳤다. 불안하진 않았지만 경직되고 있던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리허설 시작하자."
어떻게 먹었는지 (사실 공연 때는 잘 먹질 못한다.) 짧은 점심시간을 가지고 동아리 사람들을 재촉했다.
공연 시작 3시간 전, 본격적으로 리허설을 시작하며 최종 점검을 시작했다. 이젠 불안해도 공연 전이라 어쩔 수 없었으니 긴장이나 풀자는 마음으로 기타를 멨다. 안정적인 드럼 비트에 맞춰 몸이 기억하는 대로 기타를 달랬다. 떨리는 탓에 기타도 같이 우는 소리를 냈다. 리허설은 문제없이 끝이 났고, 어느덧 공연은 시작 1시간 만을 남기고 있었다. 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 책상을 들여다 놓고, 벽에 붙여놨던 포스터를 소강당 입구로 군데군데 옮겨 붙였다. 한두 명씩 관객들이 오자 제법 공연장 느낌이 났다.(당장은 관객들이라고 해도 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색색의 조명이 돌아가며 강당을 은은하게 비춰줬고 좌석에 사람들이 채워지자 강당의 음향제어실로 올라가 커튼을 올렸다. 그리고 어색한 적막과 환호가 섞인 공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