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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Mar 24. 2023

도마로부터의 온도

<하얼빈(김훈)과 영웅(윤제균)을 감상하고>

 영화인지, 소설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상상 속의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이래저래 힘들게 살던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곳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 작은 소녀는 바다 건너 나라에 대항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소녀의 바람이 무심하게도 일왕은 라디오 방송에서 항복 선언을 했다. 소녀는 갈 곳 없는 좌절감을 안고 뒷산에 올랐다.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던 중 낡은 집에 내걸린 태극기를 발견한다. 그녀의 나라 역시 가해자였던 것이다.

3.1절에 자신의 집 베란다에 일장기를 내건 목사의 뉴스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반면 나는 이 뉴스에 어디서 보았는지도 모를 위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3.1절의 일장기와, 광복절의 태극기를 동일시한 것만 같아 죄책감이 일었다. 애국심이 부족한가? 최근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가 발표되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두 작품을 허겁지겁 찾았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두 작품에 매료되었다. 하여 이러한 경험을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




 김훈의 하얼빈과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모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사형당하는 장면까지를 그리고 있다. 다만 그 성격은 매우 다르다. 소설은 뜨거운 청춘을 차갑게 그리고 있고, 영화는 차가운 영웅을 뜨겁게 그리고 있다. 차이는 후일담을 보면 선명하다. 역사소설에 가까운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의 족적을 차갑게 적고 있다. 반면 뮤지컬 영화인 영웅은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밝힌다. 같은 인물로 이러한 온도차를 지닌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먼저 하얼빈은 이토를 사살하기 위한 모의 장면을 굉장히 간단하게 묘사한다. 우덕순에게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던데 함께 갈래?'라라고 제안하고 우덕순이 '가자.'라고 대답하며 그들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미리 챙긴 총을 품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모습은 너무도 차가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감정을 잔뜩 드러내는 사람보다 담담하게 자신을 밝히는 사람에게 공감할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이토 히로부미 위령제에서 사과하는 안준생의 모습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은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안중근과 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야 하는 검사 사이의 신경전이다. 솔직히 이토 히로부미 역시 관료로서 조명하는 한편 그를 죽이는 장면까지 냉정하여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하는 이유를 책 안에서 찾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안중근과 검사 사이의 대담이 더욱 쫄깃하다. 또 다른 신경전인 두 신부 사이의 안중근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종교가 그러하듯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는 이해가 필요치 않다. 김훈 작가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50년 전부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마음이 오롯이 응축되고 정제되어 있는 이러한 필체에 독자는 소설가의 생각이 얼마나 묵직한지 느낄 수 있다.


 반면 뮤지컬 영화인 영웅은 잘 웃기도, 울기도 하는동료가 많다. 그 동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노래도 잘 한다. 하지만 가장 신기한 건 따로 있다. 경찰에 체포당해서 고문 받다가 사망한 독립군을 위해 그들끼리 성당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여유가 있다고? 총독부의 수장을 암살하려던 기생을 바로 죽이지 않았으면서 그가 자결하도록 놔둔다니 말도 안 돼! 잊지 말라. 이 영화는 뮤지컬이다. 성당에서 일종의 레퀴엠을 부르고, 자결하기 전에 생애를 곱씹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만 있다면 개연성에는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에서 계속 시도하는 유머 중 내게 가장 큰 웃음을 준 장면 이후의 시퀀스를 밝히고 싶다. 서로 마음이 있는 남녀가 부부인 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깝게 팔짱을 끼자 안중근 의사는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아.'라고 핀잔을 준 뒤 자리를 비운다.둘만 남은 이들의 앞에 일본의 순사가 안중근을 찾아 지나친다. 이 뒤의 시퀀스는 클리셰에 가깝다.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맞아서 '이렇게 되는구나.'로 바뀐다. 하지만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써니로만 알았던 박진주 배우가 죽어가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연기력과 노래 실력에 눈시울부터 소름이 돋는다.




 우주배경복사라는 개념을 아는가? 우주가 한 점에서 폭발했다는 빅뱅이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서 138억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복사열이 남아 우주에 고루 퍼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완벽히 일정하지는 않고 조금씩은 그 온도가 달라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별이 만들어졌다는 논리다. 갑자기 무슨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과학 이야기인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일종의 빅뱅이라면 1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에너지는 남아 있다는 얘기다. 온도차를 가진 역사로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에 감명받는 36.5도씨의 내가 있다.


 애국심은 무엇으로 고취되는가? 영화 한 편, 소설 한 권 보았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기에는 무리가 있으리라. 그럼에도 안준생의 선택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고, 진주의 죽음에 울컥하는 마음이 오른다. 이제는 직접 보지도, 그리지도 못할 태극기의 모양은 3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죽는 날까지는 잊지 않으리라. 내가 어느 위치에 있건 이것 하나는 변치 않는다. 나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과 같은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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