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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Apr 28. 2023

음식 맛있게 먹는 방법

<여행의 맛(노중훈) 특강을 듣고>

 "네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맛없는 게 있긴 하냐? “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맛집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업신여겨지고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맛있게 먹고 온 식당을 추천해 봤자 지인들에게는 흔한 밥집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인들이 추천하는 메뉴를 따라가 보면 또 그만한 맛집이 없다. 그럴 때면 묘한 칭찬을 받기도 한다.
 "참 먹일 맛이 나는 놈이야. 어쩜 그렇게 뭐든 맛있게 먹냐?“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가 나옴에도 먹는 양은 줄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복스럽게 먹는 것만큼은 나의 장점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아는 지인이 2주에 걸쳐 2시간의 강의를 2회 진행하는 특강을 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맛집 여행작가라는 소개를 받아 우선 그가 집필한 책을 찾아보았다. '할매, 밥 됩니까?'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과 소개하고 있는 식당이 일반적으로 맛집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는 글에 첫인상이 좋았다. 허름한 밥집의 수수한 밥상과 할머니의 생애를 소개하는, 그 자체로 가정식 백반과 닮은 이 책을 읽으며 묘한 동질감이 일었다. 결국 나는 작가가 아닌 이 사람에게 마음이 끌려 수강을 결정했다.
 첫 번째 강의의 주제는 해외여행지였다. 작가님은 강의가 지루해질 만하면 앞자리에 앉은 여덟 살의 어린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가끔씩은 상식 퀴즈를 내며 보내는 시간이 알찼다. 주로 파워포인트에 사진을 보여주며 강의를 진행했기에 솔직히 시각 장애인으로서 소외되는 감이 있었다. 허나 작가님의 설명에 빔프로젝터가 바뀔 때마다 50명 넘는 수강생들이 감탄하는 반응에 덩달아 소름이 돋았다.직접 고래를 마주한 장면이나 핀란드의 블랙 포레스트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가 특히 그랬다.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사는 이곳의 동네 맛집을 추천하며 첫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1주일이 지나 두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에는 전국의 할머니 식당을 소개했다. 할매 밥 됩니까에서 추천했던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와 식사를 해보라고 했던가? 직접 마주 앉아 수저를 들지는 않았지만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드러났다. 기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가성비라는 말은 싫어하지만 싸고 양 많은 식당을 찬양한다. 짠맛보다는 슴슴함을, 신메뉴보다는 정통을 사랑하는 작가님의 취향은 한 마디로 주당 아저씨였다. 오해는 말라.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가 즐거운 아재의 귀여운 이미지니 말이다. 작가님은 새로운 식당을 소개할 때마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에게 소울푸드가 무엇인지 물어보고는 했다. 자연스레 나의 소울푸드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제게는 소사가 대사입니다.“
 도서의 첫 머리에 '들어가며' 밝혔던 이 문장에 진정성을 느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전국의 할머니 식당을 찾아 끼니를 채워가며 그것을 기록하고 소개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남들에게는 사소할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중요한 일이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평범한 밥집일지 몰라도 내게는 맛집 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의 소울푸드는?
 점심에 칼국수처럼 넓적한 면 위에 고기가 잔뜩 들어 있는 소스를 부은 짜장면을 먹었다. 도삭면이라고 불리는 든든한 면에 꾸덕꾸덕한 짜장 소스가 어우러져 배가 찼음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 맨밥 한 공기에 빈 그릇을 만들었다. 저녁에는 본 도시락에서 바싹 불고기 샐러드를 먹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보리밥의 식감과 불고기의 달달함이 신선한 샐러드에 잘 어우러졌다. 아침은 압력밥솥에 직접 지은 쌀밥과 어머니가 싸주신 미나리와 부추무침 같은 밑반찬을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들기름을 두른 달걀 프라이를 비벼 먹었다. 이들 중 무엇을 포기할 수 있으랴?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밥집이나, 흔한 도시락집, 냉장고의 흔한 밑반찬이 소울푸드라니 미덥지 못해도 좋다. 업신 여겨져도 좋다.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짝사랑하고 있는 상대를 말하면 받았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문득 겹쳐진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나만이 아는 그녀의 매력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눈이 낮다는 현시대에는 부적절할 평가에 행복의 기준이 낮아지기를 노력하는 내가 있다. 뭐든 예뻐 보이기를, 뭐든 맛있게 느끼기를, 오늘 겪은 어떤 일이든 좋아할 수 있기를. 2주간 여행을 배우며 나는 쉬이 기뻐하는 스스로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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