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는 ADHD 약을 삼키고 평소처럼 학교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손을 휘휘 저으며 행복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퍼지는 아침, 우리는 평소처럼 조용한 동네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익숙한 검은색 차가 우리 바로 옆에 바짝 멈춰 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차창을 바라보았다. 스티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행복이는 반가운 얼굴로 외쳤다.
"대디!"
주저 없이 차로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스티븐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손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었고, 안에는 반쯤 남은 오렌지 주스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무언가 둥둥 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컵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행복이가 먹었어야 할 ADHD 약이었다.
"이거 뭐야?"
스티븐이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혼란과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행복이는 순간 움찔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그냥 삼키기 싫어서 주스에 넣었는데..."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설마 약을 녹여서 마실 생각이었던 걸까?
스티븐은 깊은 한숨을 쉬며 컵을 흔들었다. 주황빛 액체 속에 남아 있는 하얀 알약은 천천히 부서지며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다 마셨으면 어쩔 뻔했어?"
나는 피식 웃으며 "글쎄, ADHD가 좀 나아졌을지도?" 하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찔했다.
행복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나는 가만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복아, 약은 녹이는 게 아니라 삼키는 거야. 다음부터는 꼭 물이랑 먹자, 응?"
행복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븐은 마지막으로 오렌지 주스를 한 번 더 내려다보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우리는 다시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아침 공기는 여전히 상쾌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작은 걱정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 약을 먹일 때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햇살이 서서히 퍼지는 거리에서 행복이는 다시 평소처럼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가 또 시작되고 있었다. 행복이를 학교에 보낸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와 스티븐과 함께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왔다. 바닷물은 반짝이며 잔잔한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침의 작은 소동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행복이가 약을 먹을 때 더 신경 써야겠어."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티븐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주스에 넣은 건 상상도 못 했어. 혹시라도 약을 안 먹고 버리거나 하면 어쩌지?"
우리 둘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내 입 안으로 뭔가 잽싸게 들어왔다. 순식간에 입 안 가득 퍼지는 끈적한 감촉. 나는 본능적으로 "콱콱!" 기침을 하며 그것을 뱉어냈다.
파리다.
나는 질겁하며 입을 손으로 문질렀다. 스티븐은 그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싫어~ 네가 우리 동네 바닷가 산책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파리들이지!"
나는 찡그린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사실, 나는 골드 코스트 바다가 산책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동네 바닷가에는 유독 파리가 많았다. 그래서 싫다. 특히 해가 떠오를 때나 해질 무렵, 끊임없이 달려드는 작은 벌레들 때문에 기분 좋던 산책도 종종 곤욕이 되곤 했다.
"이 동네 바닷가는 왜 이렇게 파리가 많지? 이유를 모르겠어" 나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입 안을 헹굴 겸 물을 마셨다. 스티븐은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말했다.
"그러게, 파리들한테는 여기가 천국인가 봐. 네 입까지 노리다니."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파리 한 마리에 기분이 상했지만, 곧 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내 기분을 조금씩 달래 주었다. 입으로 들어가야 할 것과 들어가선 안 될 것이 따로 있는데, 오늘은 그 경계가 모호해진 기분이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