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주 목요일처럼 행복이의 운동 연습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아이가 갑자기 화를 냈다. 자기 신발 끈을 묶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이제 충분히 컸잖아. 이런 건 스스로 해야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행복아, 너는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야 해. 아빠랑 대디가 얼마나 널 챙기고, 신경 쓰고 있는지 정말 알아야 해.”
사실 나도, 스티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때로는 조율하고, 때로는 속상해하면서도 결국 ‘행복이 잘 되길’ 바라는 같은 마음으로 함께 움직인다.
다른 집 부모들처럼 바쁘게,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느라 아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 부모님도 그랬다. 내가 행복이에게 신경 쓰는 만큼 부모님이 나에게 신경 써 주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아이를 신경 쓴다. 아이 숙제를 챙겨야 하고, 운동 연습도 혼자 해야 하는 게 많은 아이들의 현실이다. 부모님이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는 다르다. 운동 연습은 물론이고, 학교 공부면, 숙제,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오늘처럼 작은 일에 짜증을 내거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는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이건 당연한 게 아니야.”
“이건 사랑이고, 너를 위한 배려야.”
행복이가 지금은 그걸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인생에 이렇게 깊이 관여하고, 한 사람의 하루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렇게 운동 연습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중국집에 들러 행복이가 좋아하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아이는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를 반복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조용히 웃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화가 났던 순간도, 서운했던 말들도 식탁 위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행복이는 자연스럽게 내 품에 안겼고, 나는 본능처럼 그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우리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함께 주차장으로 뛰었고, 뛰는 도중 나는 아이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해, 행복아.”
그 순간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모든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런 순간,
이 짧고 조용한 애정 표현이 아닐까.
신발 끈을 묶느니, 문제집을 풀게 하느니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남는 건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배운다.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세상의 규칙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