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를 키우면서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아무리 아이를 챙겨주고 잘해주고 싶어도, 정작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본 어른의 입장에서 아무리 좋은 것, 필요한 것이라 여겨도 아이 스스로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 모든 노력은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허공에 흩어져버리곤 합니다.
내일, 목요일은 행복이의 크로스컨트리(장거리 달리기) 날입니다. 작년에는 제가 주도해서 함께 연습을 했고, 그 덕분에 행복이는 학년에서 탑 6위 안에 들며 아주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릅니다. 며칠 전부터 아이와 함께 연습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행복이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하기 싫어.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그 말투엔 의지가 없었고, 마음이 닫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조심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일 달리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아이는 조용했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해봤습니다.
“이번에 5등 안에 들면, 너 갖고 싶은 거 말해봐. 아빠가 들어줄게. 대신, 못 들면 아빠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줘야 해.”
그리고는 덧붙였죠.
“결국은 네가 얼마나 해보려고 하느냐에 달린 거야. 너 하기 나름이지.”
행복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자신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올해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연습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조금 아프면서 동시에 아이가 정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로서 나는 자꾸 결과를 걱정하고,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뭔가 해보자’고 등을 떠밀지만, 정작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이 부담스럽고 이미 스스로 마음을 접은 상태였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는 건 다른 일입니다. 나는 때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존중해야 함을 배워갑니다. 내일, 행복이가 어떤 결과를 내든 그건 그의 몫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옆에서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버지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아이 대신 무엇인가를 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아이의 앞에 서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고, 때로는 아이 대신 달려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결국 아이의 삶은 아이 자신의 발걸음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걸요.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이를 격려는 하되, 강요는 하지 않기로. 결과보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자기 속도로 삶을 받아들이는 아이로 자라나도록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자꾸 흔들립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딱 한 번만 더 같이 뛰어보면 자신감이 생길 텐데...”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참지 못하고 다시 말을 꺼내게 됩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욕심도 함께 자라나는 것 같습니다. 그 욕심이 아이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내가 안심하고 싶은 마음,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배웁니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등을 밀기보다 곁에 서서 기다려주는 것임을. 행복이의 달리기는 내일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삶이라는 더 긴 마라톤에서 아이 스스로 리듬을 찾고 자신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아이의 옆에 서 있습니다.
연습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해 봅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