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처음이 가장 힘들다. 낯선 상황, 익숙하지 않은 마음, 처음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다르다. 몸도 마음도 그만큼 적응해 나가기에,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은 덜 힘들어진다.
행복이도 그랬다. 어제 새벽, 내 출근 기척에 잠에서 깨어 "아빠 가지 마"라고 속삭이던 그 아이가, 오늘은 나름의 루틴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어제와 같은 이별이지만, 아이는 덜 무서워했고, 나 역시 덜 걱정했다. 그렇게 둘째 날이 시작됐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바로 행복이가 학교 대표로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출전하는 날이다. 여러 학교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 달리는 큰 행사였다. 얼마나 긴장되었을까. 내가 함께 가서 응원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스티븐은 여전히 골드 코스트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서도 하루하루 전쟁이었다. 이삿짐을 겨우 보내고, 내일은 청소를 마무리한 뒤 부모님과 함께 오후 비행기로 멜버른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나도 출근을 해야 했기에, 오늘의 경기엔 응원 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뾰족하게 마음을 찔렀다.
어젯밤, 나는 행복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대는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너의 최선을 다해보자. 아빠는 네가 잘해도, 못해도 항상 자랑스러워.”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한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늘 그렇듯이 근무표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가슴을 뛰게 했다.
“10시 40분 퇴근.”
행복이의 경기는 11시 시작이다.
불가능 같던 일이 갑자기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 달리면 된다. 바로 공원으로 가면 된다. 내가 조금만 더 빠르게 움직인다면, 아이에게 내 응원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근무가 끝나는 순간, 나는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유니폼 위에 재킷만 걸친 채 숨이 차도록 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장이 보였다. 여러 학교의 깃발, 아이들의 긴장된 표정, 교사들의 호명 소리, 그 사이에서 나는 행복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출발선에 서 있는 아이의 얼굴은 긴장과 기대가 섞인 표정이었다. 아, 저 작은 어깨 위에 오늘의 무게가 얼마나 실려 있을까. 나는 멀리서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행복아! 아빠 왔어! 파이팅!!!”
행복이가 나를 보았다. 순간 얼굴에 번지는 그 웃음. 그 짧은 눈 맞춤 하나가, 그 어떤 말보다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곧 출발 신호가 울렸다.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 대회를 떠올리며 코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처럼 한 바퀴 도는 코스겠지’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내 앞을 지나가자 전력을 다해 소리쳤다.
“좋아! 거의 다 왔어! 끝까지 힘내!!”
하지만… 작전 실패였다.
올해는 두 바퀴를 도는 경기였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 아니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이에게 “거의 다 왔다”라고 외쳐버린 나는 순간 후회했다. 아이는 내 말을 믿고 속도를 끌어올렸고, 그것이 체력에 부담을 주었는지 뒷바퀴에서는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아이를 쫓아 옆길을 달렸다. 마지막 코너를 도는 순간, 행복이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결승선을 통과했다. 메달을 따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자기의 레이스를 완주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와, 정말 잘했어. 네가 마지막까지 달렸다는 게 아빠는 제일 자랑스러워.”
때로는 큰 선물이나 결과보다, 그 순간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걸, 오늘 아이를 통해 다시 배웠다. 스티븐은 내일 돌아오고, 집엔 다시 익숙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짧은 시간 동안, 아주 큰 마음의 선물을 받았다.
행복이의 두 번째 독립적인 아침, 그리고 두 번째 크로스컨트리 대회였다.
우리 둘 다, 어제보다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부모란, 그저 곁에 있어주고 끝까지 응원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승선을 함께 건너지는 못하더라도, 끝까지 바라봐주는 사람이 부모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