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거실에 작은 불빛 하나 켜지지 않은 채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준비해야 했다. 새벽 집안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문득 등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행복이었다. 어제 꽤 피곤했는지 7시에 잠들었는데, 내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이는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를 찾아왔다.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행복아, 아직 너무 이르니까 방에 들어가서 좀 더 자.” 그러자 아이는 내 허리를 꼭 안고 속삭였다.
“아빠… 가지 마…”
그 한마디에 가슴이 저릿했다. 꼭 안긴 작은 품에서 전해지는 체온과 목소리에, 나는 순간 움직일 수 없었다. 어깨를 툭 치는 듯한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다.
지금 스티븐은 골드 코스트에 가 있다. 부모님의 이사를 도와주느라 이번 주는 집에 나와 행복이, 그리고 새 식구 치카만 함께 남아있다. 익숙한 일상이지만,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것은 여전히 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전날 밤, 나는 행복이에게 말했다. “아빠는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하니까, 자고 있으면 소피아가 7시에 와서 너 깨워서 학교에 데려다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고, 내가 떠나는 기척을 느낀 것이다. 아빠가 자신 없이 하루를 시작하려는 그 순간, 아이는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불 꺼진 거실에서 내 허리를 안고 “가지 마”라고 말하는 그 말엔 단지 출근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아빠와 조금만 더 있고 싶은 마음, 혼자 남겨지는 불안,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빠는 출근을 해야 하고 조금 더 자고 있으면 소피아가 올 거야 걱정하지 마.” 그래도 아이는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혼자는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치카를 행복이 옆에 두었다. 치카가 행복이의 손을 핥으며 함께 누웠고, 그렇게 아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겁고 슬펐다. 이 작은 몸 하나 지켜주는 것도, 때론 세상의 바쁜 흐름에 휘말려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현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가족을 위해 일하러 나가는 길이지만, 그 길이 때론 가족과 멀어지는 길 같기도 했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아이의 방을 바라보았다. 다시 어둠 속으로 잠긴 그 방 안엔, 사랑하는 아들이 내 품을 그리워하며 잠시나마 눈을 떴던 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독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지만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새벽녘, 아이가 나를 꼭 안고 “가지 마”라고 했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출근길 내내 아이의 체온과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일하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는 아침을 처음으로 혼자 보내야 했던 날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치카와 시간을 보냈다 . 그리고 행복이 픽업시간이 되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행복이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아침의 슬픔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늘 아침 잘 지냈어?” 조심스레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 혼자 아침도 먹었어. 치카랑 같이 소피아 기다렸어.”
그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이 작은 아이가, 낯선 하루를 스스로 견뎌냈다. 이제 겨우 10살 어린 나이에, 혼자 아침을 먹고, 강아지 치카와 함께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그 모습이 대견하고 또 미안했다. 아이는 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씩씩한 척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성장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도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용감했구나.’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나눈 대화, 체육 시간에 뛴 이야기까지. 나는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듣다가 문득,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루를 잘 보내준 것이 얼마나 큰 기적 같고 감사한 일인지 실감했다.
가끔은 부모가 자식을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늘 아침의 “가지 마”는 아마도 행복이가 내게 건넨 사랑의 표현이었고, 저녁의 “혼자서 잘했어”는 이 아이가 나에게 보여준 용기였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어떤 말보다 진심이 담긴 작은 목소리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