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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도 여자와 잘 수 있다, 하지만…

by Ding 맬번니언

“게이가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섹스는 가능해?
그렇다면 더 이상 게이가 아닌 거 아냐?”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건, 넌 게이가 아닌 거 아냐?”

이런 질문들.
어쩌면 날카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일반사람들이 진심으로 게이들에게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질문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현실 속에서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한 지방 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은 늘 '정상'이라는 이름의 틀을 강요받는 사회였다. 사회적 분위기, 가족의 기대, 주변의 시선 속에서 나는 ‘정상’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사랑이라기보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건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는 항상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늘 외줄을 타듯 살아갔다.


그게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기보단, 사회가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나도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정말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정상이라는 단어 안에 나를 끼워 맞추면 나도 언젠가 ‘정상인’이 될 줄 알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 복잡해졌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그 어울림 속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졌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점점 더 선명한 목소리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여자와 잘 수는 있어. 하지만, 여자와 자고 싶지는 않아.”

그때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남자를 육체적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몸은 사회의 기대에 맞춰 움직였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분명하게 게이로서의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 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나는 20대를 소비했다. 흔히들 말한다. 20대는 고민하고, 방황하고, 실수도 하며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라고. 그 말이 맞았다. 나 역시 단순히 게이라는 것으로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20대의 끝자락에서 호주에 왔다. 이곳에서 30대를 보냈고, 이제는 어느덧 40대 중반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그리고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게이라는 것은, 그저 ‘존재의 한 부분’ 일뿐이라는 걸.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키가 크든 작든, 목소리가 높든 낮든, 사람은 모두 같으면서 다르다. 게이도 마찬가지다. 그저 수많은 다양성 중 하나일 뿐,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르다고 차별을 받을 수 없다. 나는 게이이고,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게이이면서 아빠이고 그냥 동양 남자다. 호주에 오고 나서 이 깨달음을 받아들였다.


물론, 호주에도 차별은 있다. 아직 학창 시절의 아이들은 게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누군가를 놀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자라던 시절, 나는 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숨을 죽여야 했고,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나 자신을 꾸며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달랐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나를 봐주는 시선들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게이라는 건, 단지 내가 사랑하는 방향일 뿐, 내가 누구인지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지금, 20대의 젊은 게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은 여전히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도 부모 생각은 해야지.”
“너무 티 내지 마.”
그런 말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보다 더 중요한 건 너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래도록 갈등했고,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진짜 나로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 길이 늘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길 끝에는 후회보다는 진심이 남는다.

그러니, 억지로 감당해야 할 인생을 살지 말자. 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네가 원하는 옷을 입고, 네가 진짜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자.

나는 그 말을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전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자."

그것이 너를 지켜줄 단 하나의 문장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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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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