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너무 행복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호주에 오지 못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나는 남보다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내 마음보다 남의 눈치를 더 먼저 살피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 나는 가족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불쌍한 한 여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에서 수많은 유부 게이들이 술에 기대어, 한숨 속에 자신의 인생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때의 선택으로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얽매어 버린 채, 진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렇게 살았더라면, 행복보다는 후회와 고통이 가득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용기를 내어 결혼을 거부했더라도 나는 결국 가족의 기대와 짐을 짊어진 채, ‘자기 인생’ 없이 ‘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속은 텅 빈 채로 살아가는 삶.
그런 인생이 과연 의미 있을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 인생이 아니다. 당신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을 죽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만약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나는 어떤 형태로든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의 게이들이 한국을 떠나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이것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워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도, 그것이 진정 나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 자신의 선택에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나는 이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어느 게이 술집 구석에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나는 당신과 다르게 한 남자와 결혼했고,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당신도 싱글 게이들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고 위로하겠죠. 그리고 이렇게 당신은 지금도 혼잣말처럼 속삭이겠죠.
“그래도 나는 자식이 있고, 나이 들어서 나를 돌봐줄 아내라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게 위안이 되나요? 그럼 게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진짜 당신은 그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진심을 마주하는 건 두렵지만, 그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그 길을 걸었고,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