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20살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20살에,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였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그 시절 나는, 해야 할 공부 대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갇혀 있었다. 가족이 나를 받아주지 않고 그들의 반대가 나를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세상에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정작 나에게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 부정과 숨어 지내는 데 다 써버렸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깝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20대 게이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호주라는 나라에서 게이로 살아가며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게이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직 한국 사람들은 게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로 싸우고 있지만 말이다. 세상에 수많은 게이들은 각자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것도 틀린 삶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완벽하고 이렇게 꼭 살아야 된다라는 전형적인 삶이란 없는 것처럼 전형적인 게이 삶도 없다.
우선, 많은 게이들은 싱글로서 자기만의 자유롭고 활기찬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파티와 여행, 커뮤니티와 네트워크 안에서 스스로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커플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형태 또한 하나가 아니다.
첫 번째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커플.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 관계든 현실의 벽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중 많은 이들이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형태로 관계의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스티븐과 함께 살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합의를 했다.
“Don’t tell, don’t ask.”
너무 많은 걸 묻지 않고, 너무 많은 걸 강요하지도 않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책임감지기로 합의 보았다. 처음에는 우리 커플도 완벽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우리 커플은 완벽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룰도 필요 없어지는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어가는 중이다. 우리 커플은 완벽하진 않지만, 이해와 현실 사이의 균형 속에서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다. 그렇게 나는 이 모든 것을 늦게 알았지만, 결국 진정한 나를 만났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지금 행복한 게이다.
이제 와서 20살의 나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의 나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버텨냈고, 결국 이렇게 나로서 살아가는 오늘에 도달했다. 20대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조금 늦었지만,
나는 나를 받아들였고,
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아이까지 함께 키우며
누구보다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게이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우리가 만들어가는 삶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
그리고 나는 그 다름 속에서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