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지인 닉과 닉의 아들 앤디를 시티에서 만났다. 점심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화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중학교 진학으로 옮겨갔다. 닉은 최근 앤디를 사립학교에 보낼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아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행복이를 무조건 사립학교에 보낼 거야.”
그 말을 하며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립학교의 등록금은 내 월급보다도 많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은 그래서 좋은 학군의 공립학교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인 줄 알았는데, 그가 덧붙인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공립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야. 학교마다 분위기가 달라. 그 안에서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 그리고 결국 어떤 어른이 될지가 달라지더라고. 그렇게 아이에 미래가 달린 문제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우리는 흔히 ‘학력’과 ‘성적’만을 교육의 결과로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아닐까.
그리고 그 방향은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만나는 친구와 교사, 그리고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건 학교의 이름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와 가치관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립학교를 선택할 생각이다. 그 선택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을 위해 기꺼이 오늘도 일을 하고,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면서 저축을 하고 있다.
공립학교에 간다고 해서 아이들이 전부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적인 영향을 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반대로, 사립학교에 간다고 해서 아이들이 전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모들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곧, 생활 자체가 불안정해서 방치되거나 사회적 보호망에서 멀어진 아이들과 만날 확률은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건 '이 아이가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랄 것인가'에 대한 확률과 리스크 관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인생은 그 어떤 변수도 예측할 수 없다. 공립학교에서 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만나 건강하고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는 아이도 많고, 사립학교에서도 길을 잃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통계를 말하자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은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닉의 고민도 이해가 간다. 그도 그저, 내 아이가 조금 더 괜찮은 환경 속에서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뿐일 것이다. 그 마음은, 사립이냐 공립이냐를 떠나 모든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