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주는 이제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섰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한층 차가워지고, 밤엔 이불 밖 공기가 마치 손끝을 스치는 얼음처럼 느껴진다.
매번 겨울이면 우리 커플은 밤마다 작은 갈등이 생긴다. 그 갈등의 이름은,
"침대 위의 온도 차이."
스티븐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데도 나는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춥고, 그는 더워서 이불을 걷어찬다.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자고 싶고, 그는 조금 더 차갑게 자고 싶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조율이 어렵다. 히터를 켜면 나는 겨우 살겠는데 스티븐은 땀을 흘리고, 창문을 열면 스티븐은 상쾌해하지만 나는 코끝이 얼어붙는다.
우리는 그렇게 매 겨울마다 '어떻게 자야 할지'를 두고 싸운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맞을 수는 없다는 걸, 함께 살아가면서 더 깊이 배운다. 그리고 어릴 때 어떻게 성장했는지가 정말 중요함을 배운다. 우리는 매년, 같은 침대 위에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서로 다른 성장 환경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스티븐은 호주에서 자랐다. 겨울을 대하는 방식도, 온도에 대한 감각도 어쩌면 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21도라는 숫자에 합의했다. 나에게는 조금 추운 온도, 스티븐에게는 조금 더운 온도.
둘 다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맞춰준 작은 타협의 온도다. 이 온도는
‘누구 하나가 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한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꽤 큰 의미가 있다. 사랑은 결국, 각자의 기준을 조금씩 내려놓고 중간을 찾아가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행복이는 그 ‘21도’의 온도 속에서 자란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춥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운 그 절묘한 중간의 온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며 찾아낸 그 작은 타협점 안에서 행복이는 오늘도 웃고, 잠들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어떻게 자라느냐’는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느냐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
우리가 조율한 이 작은 온도 하나가 행복이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언젠가 그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때 기준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맞춰가며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운다.
21도의 온기 속에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