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행복이가 치카를 돌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할 만큼 마음이 먹먹해진다.
작고 말랑한 생명체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반복하고, 때로는 지치지 않고 웃으며 가르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지금 네가 치카에게 하는 그 마음, 바로 그게 내가 너에게 해온 마음이야.”
행복이는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이지만, 치카 앞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작은 보호자가 된다.
"치카, 앉아."
"잘했어, 치카야!"
말 한마디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고, 치카가 실수해도 화내지 않고 다시 가르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동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워왔는지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배웠다. 칭찬을 지금 보다 더 많이 해주어야겠다는 것을 말이다.
아빠는 치카를 돌보는 너처럼, 너를 돌보았다. 나는 네 눈을 읽으려 했고,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귀 기울여 들었고, 때로는 너의 언어가 아닌 마음을 해석해야 했고, 인내하고, 웃으며, 끝없이 반복하며 기다려왔다.
너는 지금 치카를 돌보며 어쩌면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기다림을 배우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보며 아이였던 네가 조금씩 ‘어른의 마음’을 품어가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
치카가 실수하면 너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시도하고, 치카가 성공하면 하늘만큼 기뻐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린다. 꼭 내가 너를 보면서 했던 행동들을 말이야.
나는 문득, 이 모든 시간이 단순히 강아지 훈련이라는 행위 너머에 사랑과 성장, 그리고 마음의 대물림이 숨어 있다는 걸 느낀다. 네가 치카에게 보여주는 그 따뜻한 눈빛은 어쩌면 내가 매일 너를 바라보며 보내온 수없이 많은 눈빛들 속에서 자란 것이다.
너는 치카를 키우며, 나는 너를 키워온 시간을 다시 살아낸다.
아이와 강아지, 부모와 아이, 서로 다른 크기의 돌봄이 지금 이 집 안에서 겹치며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너와 나, 함께 자라나는 두 존재의 마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치카가 우리 집에 온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깊이 실감한다.
우리가 치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치카가 우리에게 와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는 단순한 반려견 그 이상이다.
작은 발소리로 하루를 깨우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웃음을 선물하며, 무언의 존재감으로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행복이는 치카 덕분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돌보는 기쁨을 배우고, 나는 그런 행복이를 보며 아이의 성장과 감정의 깊이를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낀다.
스티븐도 조용히 웃으며 말하곤 한다.
"치카가 오고 나서, 우리 집이 더 따뜻해졌어."
정말 그렇다. 때로는 사고도 치고, 짖기도 하고, 이불을 몰래 물어가는 작은 장난도 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 집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정이 흐르는 집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강아지 종류와 성격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치카를 키우면서 배우는 중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