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희성이를 만나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때 안정적인 길로 여겨지던 한의사를 선택했지만, 시대의 흐름과 제도 변화로 인해 더는 그 길이 확신을 줄 수 없게 되자, 다시 물리치료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불확실함을 외면하지 않은 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용기와 결단이 결국 그를 더 단단하고 따뜻한 길로 이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를 보며 문득 애들레이드에 있는 제이가 떠올랐다. 그도 물리치료를 공부 중이었지만, 최근 통화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적’이라는 단어 — Dismissal, Disqualification — 나도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된 단어였다. 몇 차례 학사 경고 끝에 결국 제적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명문대 장학생이었던 제이가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 누가 상상했을까. 사람의 미래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예측을 빗나간다.
나는 한국의 지방대 출신이다. 그리고 지금, 호주 멜버른에서 트램을 운전하고 있다. 이 일이 누군가에겐 의외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안정적인 직업이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도시를 누비며, 책임감 있는 하루를 살아간다. 얼마 전, 물리치료를 공부하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호주에서 막 졸업한 물리치료사의 초봉과 트램 운전사의 월급이 비슷하다고 한다. 물론, 물리치료사는 경험을 쌓고 자격을 더 취득하면 수입이 늘어나겠지만, 트램 운전사도 결코 적은 월급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사람의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 수능을 봤고, 성적이 좋지 않아 점수에 맞춰 지방대에 진학했다. 그 당시엔 참 비참하게 느껴졌다.
'나는 실패한 인생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좋은 대학에 간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물리치료를 공부했고 그것 때문에 호주까지 넘어와서 다른 일을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20대 그때의 감정이 참 우습기도 하다. 그때 내가 흘렸던 눈물, 느꼈던 좌절, 모두 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재료였을 뿐이다. 인생은 한 줄의 성적표로 정해지지 않고, 우리가 그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 다시 쓰이는 것이니까.
누구는 순탄하던 길에서 미끄러지고, 누구는 한참 돌아서야 비로소 빛을 만난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일이다. 길이 곧고 반듯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길 위에 자신만의 이야기가 쌓여간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 보면,
나처럼 삼류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였던 사람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날도 온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고, 학벌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끝까지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은 결국, 자신만의 빛을 가지게 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맬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