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과목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by Ding 맬번니언

오늘은 전반기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별 기대 없이, 늘 그렇듯 가볍게 학교 어플에 접속했다. 그저 ‘이번엔 조금 나아졌으려나?’ 하는 마음 반, ‘뭐, 어차피 비슷하겠지’ 하는 마음 반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영어와 수학 같은 주요 과목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성적표를 스크롤할수록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다. '역시나 쉽지 않구나' 싶어, 약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체육 과목에 도달한 순간, 뜻밖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체육을 잘함." 그 아래엔 '5학년 전체 오래 달리기에서 4등'이라는 기록까지 남아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아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해낸 거야?'


그다음은 미술. 요즘 들어 행복이가 유난히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성적표에 “3D 그림 표현이 뛰어남”이라는 평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아, 진짜 잘하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5년만에 처음으로 받아 본 최고 성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악. 평소에도 흥얼흥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월등히 잘함”이라는 평가는 예상 밖이었다. 얼마 전에 피아노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 어쩌면 행복이의 진짜 강점은 이런 예체능 영역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기쁘고 뿌듯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더 감사한 일이다.' 성적표 속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숫자가 아니라, 아이의 가능성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만약 한국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비교가 일상이 된 환경 속에 살고 있었다면 행복이는 이미 ‘못하는 아이’라는 낙인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아이 스스로도, 어른도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부모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반대로, 한 번 '이 아이는 잘한다'라고 인정받은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고 잘해 나간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디에 눈을 맞추고, 무엇을 키워줄 것인가’의 문제다. 오늘 나는 성적표 속에서 숫자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았다. 아이의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는 나의 시선을.


그리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운’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행복이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5년 9개월 동안 꾸준히 피아노를 배워왔다. 어릴 때부터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격려하고 기다려준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확신하게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피어난다. 그게 공부가 아니어도 좋고, 누가 봐도 '잘한다'는 무언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고 계속해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언젠가 분명히 꽃을 피운다.

지금 나는 성적표 속의 수치를 넘어, 한 아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저 숫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성장이, 오늘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버른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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