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흐려져도 관계는 남는다.

by Ding 맬번니언

일요일 점심, 스티븐의 부모님이 계신 실버타운을 찾았다. 가끔 이렇게 조용한 일요일엔, 부모님을 찾아뵙고 점심을 함께 먹는다. 오늘은 특별히 스티븐 아버지의 동생분도 방문하셨다. 놀랍게도, 그분과 나는 생일이 같다. 세상은 정말 작은 우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그런데 그분은 혼자 오시지 못하셨다. 치매 증상이 있어 아들 내외가 모시고 함께 오셨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신다.

그렇게 스티븐의 어머니와, 스티븐 아버지의 동생, 두 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대화 ‘웃픈’ 장면을 만들어냈다.

“내가 몇 살이더라?”
“나도 모르겠어, 근데 우리 나이 차이가 있었나?”
“나는 75살이고, 아, 아니었나?”
“아니야, 내가 동생일걸? 글쎄, 요즘은 기억이 자꾸 헷갈려.”

서로의 나이를 두고 몇 번을 오고 간 대화, 누가 나이가 더 많은지 헷갈리면서도 그 안엔 정겨움과 오랜 세월이 만든 부드러운 유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억은 사라지고, 말은 자꾸만 엇갈리지만 그 안에도 사랑이 있고, 삶이 있고, 관계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한 미소는 참 따뜻했다.


그런데 실은, 두 분 모두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스티븐 어머니는 85세, 스티븐 아버지의 동생분은 80세인데도 말이다. 그분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나도 언젠가는 80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기억이 흐릿해지고, 어떤 날은 어제 했던 말조차 가물가물해질지도 모른다.

그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좋은 사람이었어”
그렇게 이야기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노년은 어쩌면 기억을 잃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감정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반짝이던 순간들은 조금씩 흐려지고, 강렬하던 감정은 조용히 사그라들지만, 그 안에도 깊은 평화와 익숙한 온기가 남아 있는 걸 오늘 두 분의 웃음 속에서 느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든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그 감정만은 잊히지 않기를.
그 따뜻함만은 끝까지 내 안에 남아 있기를.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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