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가 5년 넘게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드디어 옮겼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익숙함을 뒤로하고 들뜬 마음과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우리는 새로운 피아노 학원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 학원 역시 이제 막 문을 연 듯한 분위기였다.
책상과 의자, 벽의 악보들까지 정리가 다 안 된 듯 어수선했고 그 안에서 마주한 새로운 선생님은 차분했지만 낯설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5년 동안 행복이의 상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의 집중이 어렵고, 반복된 설명이 필요하고, 늘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일쑤인 아이 피아노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모든 걸 처음 만나는 선생님께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경력 5년을 2년이라고 말했고, 3년을 슬쩍 감추었다.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작은 희망을 품었다. 혹시 이번에는 좀 다를까?
하지만...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 나로 돌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행복이는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익혔던 개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엉켜버렸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레벨 1부터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화가 났고, 속상했다. 다섯 해 넘게 쌓아온 시간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기대를 너무 했던 걸까? 아니면, 이 길이 정말 우리에겐 버거운 길일까?’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고, 무엇보다 행복이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피아노 학원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테니스도 새로운 반으로 옮겼다. 행복이가 유일하게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테니스다.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코치와 새로운 반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다른 아이들은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저번 학기 고등학생 형들보다는 이번엔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행복이도 조금은 긴장을 덜한 듯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행복이의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정확하게 넘어가는 공을 보고 기분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했다.
경쾌한 스텝과 빠른 리액션.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
남자아이들은 서서히 행복이와 같은 팀이 되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이랑 상반 되게 나는 속으로 웃었다. 오늘 하루, 피아노에서는 다시 첫걸음이었지만 테니스에서는 조금 더 나아간 하루였다.
이런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이만의 색으로 반짝이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오늘처럼 조용히 함께 웃어주면 된다. 잘하는 것도, 아직 서툰 것도 우리 둘 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함께 걸어갈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빛나든, 흐리든, 그 모든 날들을 함께 할 것이다. 잘하는 것은 격려릉 못하는 것은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행복이의 속도로 천천히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