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들의 나 플란(NAPLAN) 테스트 결과를 받았다.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나는 예상했던 대로, 학교에서 받은 행복이의 성적표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고, 다른 하나는 3학년 때 보다 분명히 나아진 점수 속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을 보았다. 검은색 점이 행복이 현재 수준이고 세모가 평균치다.
행복이는 아직 어떤 과목도 전체 평균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3학년 때 봤던 시험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3학년 성적표는 정말 말을 못 할 정도였다. 그래도 이번에 ‘가능성’이 보였다. 우리의 노력이, 그리고 아이의 작은 변화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기분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는 어김없이 행복이의 숙제를 함께 했다. 사실 아직까지 숙제는 ‘아이의 몫’이라기보다 ‘우리의 몫’이다. 하기 싫어 투덜대는 아이를 달래 가며 끝까지 이끌어주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니까. 그렇게 시킨 공부다.
숙제를 마친 뒤, 우리는 스티븐의 딸 소피아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행복이가 중학생이 되면 사립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다는 말에, 소피아는 조용히 자신의 과거를 꺼냈다.
"제가 예전에 개인 과외라도 받았으면, 지금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왜냐하면 소피아가 학창 시절, 학교 자체를 거부했던 시기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그녀는 어떤 도움도 거절했고, 자신의 세계에 스스로 벽을 세웠다. 그렇게 그녀는 학교자체를 가지 않았다. 공부는 그다음이었다. 지금은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땐 부모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은 분명히 자신만의 생각으로 기억을 재 구성 하는 것을 알았다. 소피아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나는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순간에는 잘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했던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천천히, 다정하게, 행복이의 가능성에 작은 물을 주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싹을 틔우고, 햇빛을 향해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
그 길이 조금 늦어도 괜찮다. 우리는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행복이는 또 어떻게 지금의 경험을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나만의 생각으로 나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재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