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누나는 조카의 성공을 위해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까지 감행했다. 지방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조카가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바쳤다. 조카는 분명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대단했던 건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큰누나의 열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누나를 종종 "아들 매니저"라고 불렀다. 조금은 비꼬듯이, 조금은 안쓰럽게 말이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지금 행복이에게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게 된다. 다음 달 초, 행복이가 참가하겠다고 한 그림 대회가 있다. 나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그림을 그렸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살펴보며, 색감이며 구도며 하나하나 지적하고 지도했다.
그러다 문득, 멈칫하게 됐다. 행복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그리고 싶었어."
그제야 보였다. 아이가 그리고 싶은 방식과, 내가 원하는 방식 사이의 차이가 분명했다. 나는 아이의 가능성을 도와주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아이의 손에 나의 욕심을 쥐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큰누나를 "매니저"라고 부를 자격이 있을까? 결국 우리 둘 다, 자식을 향한 마음이 너무 앞서 조금씩 선을 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결론은 간단하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다.
나는 그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필요할 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면 족하다. 잘하든 못하든, 그 그림이 아이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 문득 깨달았다. 나도 결국 행복이 매니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 '정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도와주는 것과 대신해 주는 것,
응원하는 것과 끌어가는 것,
그 경계는 생각보다 쉽게 흐려진다.
그리고 큰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야, 혹시 XX 군대 보낼 준비하고 있으면 의무병 쪽도 한번 알아봐.”
나는 물리치료사 자격이 있어서, 군 복무 당시 의무병으로 근무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보직보다 상대적으로 편했고, 환경도 덜 힘들었다. 아무리 군대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에서 복무할 수 있다면 그게 가족으로서 해줄 수 있는 작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조심스레, 누나에게 내 경험을 보태어 본다.
그리고 이왕 아들 매니저가 될 생각이라면 군대 가는 준비도 제대로 하고 가라고 말했다. 메탈준비가 가장 중요하지만 체력도 중요하다. 그리고 아무나 가는 군대 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는 또 아무도 모르는 것이 군생활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