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주의 아버지날이었다. 나는 묘하게도 최악과 최고의 순간을 동시에 경험했다. 한편으로는 아이와의 갈등과 서운함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우리는 사우스 켄싱턴에 머물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같은 곳. 한달렌트비가 2000만원이다. 스티븐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줄리엣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행복이는 오늘이 아버지날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줄리엣이 우리를 런던 시내로 데리고 나섰을 때, 행복이의 행동은 심상치 않았다. 그리스의 뜨거운 날씨에서 영국의 서늘한 기후로 바뀐 탓인지, 행복이 마음 역시 변덕을 부렸다. 그런 행복이와 관광은 그냥 나를 힘들게 했다.
사우스 켄싱턴: 전형적인 빅토리아·조지안 양식 건물, 뮤즈하우스(마차 보관소 개조 주택), 고급 아파트가 혼재. 주택 가격은 런던 최고 수준
줄리엣은 그런 행복이를 데리고 캠든 마켓을 구경시켜 주었고, 이어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배에 함께 올랐다. 관광이 끝난 뒤에는 근처의 리젠트 파크(Regent’s Park)에서 또 다른 배를 타고 행복이와 놀아주었다.
배 위에 앉아 있는 행복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순간 깨달았다. 아이가 보였던 반항적인 행동은 단순히 혼자 있는 걸 싫어해서 나온 것이었다. 관심을 받고 싶었고, 누군가와 함께 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로서 이렇게 생각했다. 행복이가 이제 열 살을 넘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행복이를 바라면서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우리 부모에게 어떤 자식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대답은 명확했다. 결코 100점짜리 아들은 아니었다. 지금의 행복이처럼, 나 역시 부모를 힘들게 하고 갈등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한 가지 분명해졌다.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 자식도, 부모도, 가족도 모두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함께 버티고 나아가는 힘이었다.
오늘은 그래서 최악이자 최고의 아버지날이었다. 갈등과 웃음, 서운함과 깨달음이 뒤섞인 하루.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결국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와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숨고 싶지 않다. 내 실수와 완벽하지 않음을 당당히, 그리고 솔직하게 아버지로서의 오늘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런 날을 피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나는 이제 아버지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