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다”는 말은 묘한 힘을 가진다. 한국에서는 특히 ‘유일, 최초, 최고’ 같은 단어가 늘 찬란하게 쓰였다. 사람들은 그런 수식어를 붙이는 순간 특별해지고, 관심의 중심에 서는 듯한 기분을 맛본다. 아마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할 것이다. 유일해야 주목받고, 최초여야 기억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인들과 새로 생긴 횟집에 갔을 때, 나는 그 ‘유일함’이 깨지는 순간을 맞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케이가 내게 말했다.
“형, 얼마 전에 이런 분이 페이스북 친구 추천에 떴어요.”
그가 내민 핸드폰 속 사진에는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이름이 분명 한국인이었고, 트램 운전사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순간 알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멜버른에서 유일한 한국인 트램 운전사가 아니구나.
그런데 놀랍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트램 운전사가 결코 나쁜 직업이 아니기에,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길에 도전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함께 걷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멜버른에서 유일한 게이 아빠도 아니었다. 지인인 다니엘 형도 있고, 또 다른 한 분도 계신다. 그러니 최소한 멜버른에만 세 명의 게이 아빠가 존재하는 셈이다. 유일함이 깨진다는 건 곧 나만의 특별함이 사라진다는 뜻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느꼈다. 유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특별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때로 더 큰 위로이자 힘이 된다. 유일함이 깨질 때, 나는 외로움이 아니라 안도감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유일함이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게이 아빠로서 한국에서 책을 낸 최초의 사람이 ‘나 하나’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 주기를, 그리고 그 순간 내 유일함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그 순간을 기다린다. 유일함이 깨질 때, 세상은 더 넓어지고, 우리 같은 삶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