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당나귀 타기였다. 오래전부터 그리스에서는 당나귀가 중요한 이동 수단이었다. 좁은 골목과 수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마을에서는 당나귀가 사람과 짐을 나르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오늘,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린도스의 아크로폴리스를 찾았다. 그곳에서 마침내 기회가 다가왔다. 아이처럼 가슴이 설레지는 않았지만,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관리인은 나와 행복이는 탑승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스티븐은 체중 때문에 거절당했다. 조금은 웃픈 상황이었지만, 결국 우리 둘만 당나귀 등에 올랐다.
당나귀는 생각보다 묵묵하고 성실했다. 경사로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올라갔다. 햇빛 아래에서 느릿느릿 흔들리는 걸음은 마치 오래된 그리스의 시간 속을 걷는 듯했다. 나는 그 순간을 즐기며, 여행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관광객이 나를 향해 말했다.
“당나귀를 타지 마세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기하고 즐겁던 기분이 단숨에 사라졌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에 질문을 남겼다. ‘나는 지금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동물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짧은 즐거움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죄책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분명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 교통수단이었지만, 동시에 현대의 시선으로는 불편한 윤리적 질문을 던졌다.
린도스에서의 당나귀 체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기한 풍경으로 바라봤고, 누군가는 무심히 스쳐 지나갔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당나귀를 타지 마세요”라는 말로 나의 행동을 문제 삼았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게 다 달랐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낯선 것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어떤 이는 외면하고,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다가가고, 또 어떤 이는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선택이고 각자의 몫이다.
이 경험은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드러냈을 때의 반응들과 겹쳐졌다. 어떤 이는 침묵으로 모른 척했고, 어떤 이는 따뜻하게 받아들였으며, 또 어떤 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를 향한 그 다양한 반응은 내 존재의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 뿐이었다.
삶은 어쩌면 늘 이런 장면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 앞에서 드러내는 반응. 그리고 그 반응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택하는가. 누군가의 불편함이나 거절이 내 삶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내 몫은 나를 지우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여행은 결국 거울이 되었다. 낯선 장소에서의 작은 경험이, 나의 정체성과 삶을 다시 비추어 주었다. 낯설게 보이는 나는 누군가의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해와 친밀함의 시작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양한 시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