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좌절했다. 어제 까지는 행복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은 정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오늘 다시 깨달았다. 2주간의 방학 동안 나는 행복이의 공부를 도와주며 루틴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고, 산책하고, 피아노를 치고, 다시 복습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오늘, 그 모든 노력이 허물어지는 듯했다.
행복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내 품에서 자꾸 벗어나려 했다. 약을 복용하지 않은 날이면 아이의 집중력은 흩어지고, 감정의 파도는 제어되지 않는다. 이런 날은 통제할 수도 제어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파도는 결국 내게 부딪혀 왔다.
문제는 오늘 집에 방문객이 있었던 것이다. 방문객들 앞에서도 행복이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속이 무너졌다. 그 순간, 나는 부모로서 한계에 닿은 기분이었다.
“내가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심장은 무너지고, 숨이 막히는데 아이는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나를 향해 말했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내가 하기 싫은 공부를 자꾸 시켜.”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찢어졌다. 나도 안다. 공부가 얼마나 하기 싫은지, 억지로 시키는 게 얼마나 미운 일인지.
나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하지만 행복이의 공부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다.
기초가 부족해서,
일 년 반이 뒤처져서,
사립학교에서 받아주지 않기에,
그 아이가 세상 속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 지금 이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이것도 내 욕심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행복이를 위해서라면서, 결국은 내가 ‘좋은 아버지’로 보이고 싶어서, 또는 나 자신이 무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이렇게 아이를 몰아붙인 건 아닐까.
그러면서 나는 문득 내 가족을 떠올렸다. 그들은 나에게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살아주면 좋겠다.”
그 바람이 결국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똑같은 일을 내 아이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이가 보통은 했으면 하는 사랑으로 포장된 욕심, 그 안에서 오늘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이런 힘든 상황으로 문득 깨달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나에게 보였던 행동과 내가 지금 행복이에게 하는 행동이 닮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조금 더 정상적으로 살아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옳은 길’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 사랑은 늘 조건이 붙어 있었고, 그 조건은 나를 점점 더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똑같은 일을 내 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행복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세상 속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는 명분으로, 나는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추려 했다.
“이건 너를 위한 거야.”
그 말속에는 사실, “내가 두렵다”는 진심이 숨어 있었다.
내가 가족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며 느꼈던 그 갑갑함과 외로움,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에게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상처는 깨닫지 않으면 반복되고, 사랑도 의심하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멈추기로 했다. 행복이를 내 틀 안에 넣으려는 욕심 대신, 그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자라 갈 수 있도록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내가 부모에게서 받지 못했던 이해와 여유를 이제는 내가 내 아이에게 건네야 한다.
그것이 아마, 나 자신을 치유하는 첫걸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