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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대는 지금 최소한 게이라는 정체성을....

by Ding 맬번니언

넷플릭스를 켜다가 우연히 새로 올라온 드라마 〈부트캠프〉를 보게 되었다. 게이가 군대에 입대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게이이면서 실제로 군대를 다녀왔기에, 호기심 반, 공감 반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물론 군대 영화답게 다소 뻔한 전개도 있었지만, 주인공이 두려움과 편견 속에서 점점 ‘진짜 자신’과 ‘진정한 남자’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마음 깊이 와닿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화 속 게이 캐릭터들의 존재감이었다. 그것은 직접 드라마를 시청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때 게이 군인(드라마 90년대)의 입대가 불법이었다고 한다.

“Don’t ask, don’t tell.”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게이라는 정체성이 군복을 입는 이유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게이들을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지만, 그 안에서 ‘게이’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미국 군대는 지금 최소한 게이라는 정체성을 ‘존재하는 현실’로 인정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게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군 복무 의무를 지운다.


그래서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 게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군대를 다녀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일반 남자’로 위장한 채 말이다. 그 안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복무가 아니라 ‘존재를 숨기는 훈련’에 더 가까웠다.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함께 생활하는 병사들 틈에서 항상 조심했고,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며 매일을 버텼다. 누군가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말이다. 게이라는 이유로 숨지 않아도 되는 나라, 군복을 입은 채로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기를 그리고 최소한 의무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면 말이다.


그런 세상이 오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건 단지 게이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다. 다름을 이유로 배제되지 않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나는 그날, 드라마 마지막 장면을 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언젠가 내 아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정체성’이 용기가 아닌 당연함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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